지금부터 다룰 내용은 전적으로 나 자신의 해석과 사유에 기반한 것이다. 결코 내가 존경하는 융박사님을 폄훼하거나 깎아내릴 의도는 없다. 다만 기존의 이론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하나의 가설적 시도로 받아들이고 가볍게 읽어주기를 바란다.
이제 지금까지 살펴본 여러 집단무의식의 개념을 토대로, 이 책에서 R로 지칭하는 인물의 자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이론에서 최상위 단계에 해당하는 자아실현의 욕구, 즉 자기완성, 성장, 자기 충족, 삶의 보람과 같은 개념은 분명 융이 말한 집단무의식의 궁극적 목표인 자기실현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에 대해 융은 인간이 완전한 자기실현에 도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다만 그 상태를 향해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나아갈 뿐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현실을 살펴보면, 특정한 영역에서 이러한 자기실현의 경계에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들도 존재하는 듯하다. 내가 주목한 인물이 바로 흔히 카사노바라 불리는 남성들이다. 이들은 일반적인 남성이라면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다수의 매력적인 여성들과의 관계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집단무의식의 마지막 단계인 자기실현에 근접한 상태를 경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전적으로 나 자신의 경험과, 주변에서 관찰한 여러 카사노바 유형의 심리 상태를 토대로 도출한 해석이다.
그렇다면 왜 남성에게 있어 다수의 미녀와의 만남이 융의 자기실현과 연관될 수 있을까? 다소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남성들은 매력적인 여성 앞에 서면 유독 긴장하고 위축되는 경향을 보인다. 여성의 외적 매력이 클수록 남성은 무의식적으로 이 여성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과 동시에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며, 심장이 빨리 뛰고 손발이나 입술이 떨리는 신체 반응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이러한 긴장을 극복하고 관계 형성에 성공한 남성은 강한 성취감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이 시점에 남성의 뇌에서는 도파민(dopamine)이 분비된다. 도파민은 우리가 목표를 달성했을 때 분비되는 보상 호르몬으로, 강한 쾌감과 만족감을 유발한다. 이 호르몬은 인간의 행동 동기와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조절자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러한 쾌감이 외부 자극을 통해 반복적으로 주어질 경우, 다시 그 쾌감을 경험하고자 하며 점차 중독(addiction)의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중독의 특성상, 시간이 지날수록 이전과 같은 강도의 자극으로는 강한 쾌감을 느끼기 어려워지고,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된다. 도박, 알코올, 쇼핑, 그리고 최근에는 SNS 중독까지, 대부분의 중독은 결국 개인의 일상을 잠식하고 파괴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더해, 나는 또 하나의 심각한 중독 형태로 흔히 OO 중독이라 불리는 현상을 언급하고자 한다. 엄밀히 말해 OO 중독이라는 병명은 존재하지 않으며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의한 강박적 성행동 장애(CSBD)가 이와 유사한 개념에 해당한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관계를 통해 쾌감을 경험할 때 다량의 도파민이 분비되며, 동시에 안정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호르몬인 옥시토신(oxytocin) 또한 분비된다.
특히 남성의 경우, 상대 여성이 매우 매력적일수록 도파민 분비량이 더욱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다수의 미녀와의 관계 경험을 가진 카사노바 유형의 남성은 도파민 중독 상태에 빠지기 쉬운 환경에 놓이게 된다. 이는 일반적인 중독과 마찬가지로, 경험이 반복될수록 개별 관계에서 느끼는 쾌감의 강도는 점차 감소하게 된다.
대체로 많은 남성들은 젊고 매력적인 여성과의 관계에서 가장 강한 쾌감을 느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동일한 대상에게서 얻는 쾌감은 감소하고, 또 다른 새로운 대상과의 관계에서 다시 강한 자극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쿨리지 효과(coolidge effect)다. 사실 나를 포함한 다수의 남성들은 현재의 연인과는 다른, 또 다른 매력적인 여성을 마음속으로 상상하곤 한다. 이는 앞서 설명한 남성의 그림자, 즉 억압된 무의식적 욕망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은 사회적 페르소나와 초자아에서 비롯된 죄책감 때문에 이러한 욕망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거리낌 없이 실천하는 소수의 남성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이들을 카사노바라고 부른다. 카사노바는 미녀와의 관계에서 순간적인 강한 쾌감을 느끼지만,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사물로 보기 때문에, 그 쾌감의 강도는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그 결과 또 다른 미녀를 찾아 끊임없이 헤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일부 카사노바는 수많은 관계 경험을 통해 인간 심리의 밑바닥과 끝자락을 동시에 체험하며, 융이 말한 자기의 실현에 거의 도달하기도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대가를 치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역설적인 과정을 도식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다음의 <그림 4-8>이다.
〈그림 4-8〉에서 보듯, 카사노바는 더욱 강한 도파민의 쾌감을 얻기 위해 점점 더 아름다운 미녀들에게 도전한다. 사실 나와 같은 평범한 남성들이 도도한 미녀의 마음을 얻기란 매우 어렵다. 그녀의 승낙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그녀가 쌓아 온 복잡한 심리적 장벽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미녀는 이미 수많은 남성들로부터 반복적인 구애를 받아왔다. 이로 인해 그녀가 기대하는 남성의 가치 수준은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녀는 본능적으로 가치가 낮은 남성을 걸러내기 위한 일종의 심리 게임과도 같은 무의식적 장벽을 형성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장벽을 돌파하는 남성이 바로 카사노바다.
이후 미녀와의 관계에 성공한 카사노바는, 다시 한 단계 더 높은 자극을 좇아 더욱 아름다운 미녀에게 과감히 도전한다. 이처럼 여러 미녀들의 심리적 장벽을 통과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카사노바는 자연스럽게 타인의 감정과 욕망을 읽고 조율하는 기술까지 습득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의 축적은 결과적으로 그를 융이 말한 자기실현의 단계에 상당히 근접하게 만든다.
이미 설명했듯, 매슬로우의 자아실현 욕구는 융이 말한 자기실현 개념과 일정 부분 유사하다. 융의 자기실현이란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무의식적 욕망을 무조건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의식과 조화롭게 통합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카사노바가 수많은 여성과의 관계를 통해 융이 말한 자기실현의 단계에 거의 도달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성의 무의식 속에는 여러 아름다운 여성과 관계를 맺고 싶다는 환상이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사회적 제약, 즉 주변의 비난이나 연인·가족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대부분은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뿐이다. 반면 카사노바는 이러한 무의식을 비교적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를 현실에서 그대로 실현한다. 그리고 반복되는 도전과 성취를 통해 자신의 어두운 무의식적 욕망을 의식과 통합해 나간다.
이 지점에서 나를 비난하는 독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뭐야? 작가는 카사노바를 칭송하고 있잖아? 융의 이론을 더럽히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앞으로도 반복해서 강조하겠지만, 나는 카사노바를 결코 옹호하지 않는다. 한때 R을 따라 카사노바가 될 뻔했던 과거의 나 자신을 지금도 깊이 후회하고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융이 말한 자기실현은 카사노바의 피상적인 자기실현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융의 자기실현은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다. 융은 역사적으로 인류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 예수나 부처와 같은 헌신적 인물들을 높이 평가했다. 반면 카사노바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따라서 카사노바의 자기실현은 융이 말한 선한 의미의 진정한 자기실현이 아니며, 오히려 그 과정에서 육체적·정신적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R의 꿈 사례를 중심으로 프로이트와 융의 무의식 개념을 살펴보았다. 이미 밝혔듯, 나는 다소 특이한 인생 경로를 살아온 사람이다. 독자들이 이러한 나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을 접하게 된다면, 심리학이 결코 딱딱한 학문이 아니라는 점을 느끼게 될 것이며, 그 매력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