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와 병원에서 만난 경국지색의 미녀
카사노바의 신비한 꿈
by 카사노바의 생존 심리학 Mar 29. 2026
먼저 페르소나다. 페르소나는 사회적 가면, 즉 체면이다. 정신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R은 자존심과 우월감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나름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R은, 사회적·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해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당시의 R은 매우 강한 페르소나를 지니고 있었다.
비록 중학생 시절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잠시 방황한 적은 있었지만, 이제는 새엄마처럼 도덕적이고 존경받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제대 후 우연히 접하게 된 다단계로 큰 손실을 입었고, 그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완전히 무너졌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려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이다.
입원 당시의 R은 이미 예전의 R이 아니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풍성하던 머리카락은 절반 이상 빠져 버렸고, 위생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원래 R은 유난히 깔끔한 성격이었다. 나와 함께 밴드 활동을 했기에 무대 공포증도 전혀 없었고, 귀고리를 하고 다닐 정도로 자기표현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런 R이 병원이라는 폐쇄된 공간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자, 삶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내려놓아 버린 것이다.
당시 R에게는 페르소나라는 사회적 가면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머리에서는 비듬이 떨어지고 몸에서는 냄새가 났다. 참다못한 간호사들이 제발 좀 씻어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단 하나의 즐거움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식욕이었다. 원래 식사량이 많았던 R은 밥과 반찬을 남김없이 비웠지만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나자, R은 다시 예전의 심각한 비만 체형으로 돌아가 버렸다.
당시 R은 스스로를 사람이라기보다 짐승이라고 느꼈다. 이처럼 삶의 의욕이 사라지면 사회적 가면인 페르소나도 함께 사라진다. 페르소나가 사라지면, 당시의 R처럼 위생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되고 오직 식욕과 수면욕만 남게 된다.
이후 거의 한 달간을 짐승처럼 살던 어느 날, R의 눈에 작은 책 한 권이 들어왔다. 바로 『신념의 마력』이었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책으로 손이 뻗어졌다.
“이 책 재밌어요!”
R보다 며칠 늦게 입원한 여성 L이였다. 그녀 역시 R처럼 침대에 묶인 상태로 들어왔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의 R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엄청난 미인이었다. 다만 왼쪽(혹은 오른쪽?) 팔에 새겨진 붉은 장미 문신이 눈에 거슬렸다.
R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바로 앞에서 보는 미녀의 얼굴이었다. 정말 아름다웠다. 그러나 곧 황급히 병실로 자리를 피했다. 며칠 동안 샤워도 하지 않고 이도 닦지 않은 상태였기에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에 드나?’
순간 말도 안 되는 생각이 R의 머리를 스쳤다.
‘에이, 아니겠지?’
물론 예전의 깔끔한 R이었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카사노바 R은 연애 경험이 많았다. 주로 여성을 쫓기보다, 다가오는 여성들과 연애를 해왔다. 그럼에도 R에게 다가왔던 여성들은 대부분 미인이었고, 함께 다니면 주변의 시선을 느낄 정도였다. 그런 기억 때문에 순간 과거의 영광이 다시 재현되는 건 아닐까 착각했다. 그러나 거울을 보는 순간 그 생각이 착각임을 깨달았다.
서둘러 샤워부터 했다. 방금 말을 걸어 준 그 미모의 여성 때문이었다. 샤워 후 다시 거울을 보았다.
‘그럼 그렇지. 이 돼지를 누가 좋아하겠어. 그냥 불쌍해서 말을 걸어 준 거겠지.’
그렇게 오랜만에 씻고 난 뒤 휴게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눈여겨보았던 『신념의 마력』을 들고 병실로 돌아왔다. 책을 펼쳤고, 곧 다음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원하는 것은 모두 이룰 수 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문장이었다. 그렇게 책에 빠져들었고, 몇 시간 만에 끝까지 읽었다.
“나는 한 시간의 독서로 누그러들지 않는 어떤 슬픔도 알지 못한다.”
몽테스키외의 말이다. 사실 오래전부터 R은 알고 있었다. 역사적 위인들의 공통점이 바로 독서광이었다는 사실을. 당시 페르소나가 완전히 붕괴된 R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독서였다.
희망! 이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비록 돈을 잃고, 머리도 많이 빠졌지만, 나는 아직 젊다.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희망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몸만들기였다. 병원 안의 좁은 공간에서 팔굽혀펴기, 스쾃, 윗몸일으키기를 필사적으로 반복했다. 시간이 지나자, 복근이 잡히고 팔다리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자신감도 함께 돌아왔다.
이렇게 운동에 매달리게 된 계기는 휴게실에서 만난 여성 L의 존재가 컸다. 점심 식사 후 간식 시간마다 그녀는 꼭 R의 옆에 앉아 말을 걸어 주었다. 예전에 R에게 다가왔던 여성들처럼말이다. 그래서 다시 위생에 신경 쓰기 시작했고, 예전처럼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원래 붙임성이 좋았언 R은, 그녀뿐 아니라 다른 환자들과도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다만 문제는 머리숱이었다. L은 종종 이렇게 말했다.
“머리가 많이 빠졌네. 머리숱만 많아도 참 예쁠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R은 예전의 자신이 정말 그리워졌다.
‘예전의 나라면, 이 여인의 마음을 금방 사로잡을 수 있을 텐데...’
“요즘 운동 많이 하니까 몸이 정말 좋아졌네.”
그녀의 이 한마디에 R은 더욱 열심히 운동했다. 몸도 좋아지고, 미녀와의 대화도 늘어나자, 점점 예전의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미래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병원을 나가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되었다. 자신의 든든한 경제적 버팀목이자, 잘 나가는 중소 기업의 사장이었던 아버지 또한 사업이 망했기 때문이다. R이 돌아갈 안전기지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