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을 단번에 완치시킨 나폴레옹 페르소나
카사노바의 신비한 꿈
by 카사노바의 생존 심리학 Mar 29. 2026
그런데 어느 날, L이 R에게 이렇게 말했다.
“얼굴이 순하게 생겨서 공무원 하면 참 잘하겠다.”
사실 왕년의 잘 나가던 카사노바였던 R에게 공무원은 도무지 어울리는 직업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만 했다. 더이상 아버지의 경제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공무원 시험이었다(당시 자주 병문안을 갔던 공무원인 나의 영향도 컸다).
돌이켜보면, 이는 R의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였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서 다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페르소나를 회복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시기에 R이 꾼 꿈이 앞에서 설명한 나폴레옹의 꿈이다.
이 꿈에서 나폴레옹은 남성의 극단적인 페르소나를 상징한다. 나폴레옹은 남성성, 정복, 자신감, 야망, 권력 추구의 집약체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하급 귀족의 자식으로 태어나, 오직 본인의 능력만으로 프랑스 황제의 자리까지 오른 나폴레옹은, 인간이 큰 야망을 품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한 인물이다. 꿈을 꿨을 당시 R은 나폴레옹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1800년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공격한 장면과 유사한 이미지가 꿈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융이 말한 집단무의식의 존재를 분명히 보여준다.
정신적·육체적으로 완전히 바닥에 떨어진 당시의 R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바로 어마어마한 성공이었다. 나폴레옹의 업적에 필적하거나, 그를 뛰어넘는 성공 말이다. 이러한 거대한 야망이 R의 무의식 깊숙이 잠들어 있던 ‘나폴레옹’이라는 집단무의식을 불러낸 것이다. 비록 꿈이었지만, 이 꿈을 통해 R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R은 나름 정말 강한 페르소나를 가지고는 있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다시 쓸 정도의 거대한 페르소나는 아니었다. 당시의 R은 마치 나폴레옹의 혼이 깃든 듯,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강렬한 자신감에 휩싸여 있었다.
입원 초기와 달리 눈빛, 말투, 걸음걸이까지 완전히 달라졌다. 같은 병실의 환자들과 L은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담당 의사 또한 이렇게 빠르게 호전되는 사례는 처음 본다고 했다. 『신념의 마력』이라는 책을 매개로 발현된 나폴레옹의 페르소나는, 당시의 R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다시 나의 우상이었던 카사노바 R로 돌아온 것이다.
이후 R은 나폴레옹처럼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 우선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역사적 위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의 일을 직접 경험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된다면 미약하나마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렇게 R은 그토록 싫어하던 공무원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소박하지만) 사회적 존경과 부러움을 받는 또 하나의 페르소나를 얻게 되었다.
또한 공무원 합격을 통해 ‘정신병원 입원’이라는 트라우마 역시 완전히 극복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R은 삶에서 우연히 겪게 되는 사건과 사고로 생긴 트라우마가 집단무의식의 거대한 페르소나를 통해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니 독자 여러분도 가능하다면 가장 위대한 꿈을 꾸기를 바란다.
융의 말처럼, 우리가 엄청난 정신적 충격으로 정신병에 걸리게 되면 무의식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집단무의식을 작동시킨다. 이는 어두운 그림자의 발동이기도 하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집단무의식의 활성화는 우리에게 강렬한 충격을 준다.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신비롭고 기이한 체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집단무의식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고, 반대로 역사에 남을 업적을 남길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이 인간이 완전히 무너져버리기 직전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거대한 집단무의식의 발동을 또 다른 집단무의식인 페르소나로 승화시킬 수만 있다면, 페르소나는 가장 고통스러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