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세입자와 더 이상한 집주인 2

방 한 칸만 월세 들어올래요?

by 허튼이

한 달 전.


인사발령으로 인해 다른 지역으로 떠날 것이 예정되었다.

이곳에서 5년 동안 일하면서 많은 일이 있었다. 집을 사고 결혼하고 고양이를 키웠다.

그리고 이혼하고 관계를 정리하고, 결국 나와 고양이 둘이서 함께 살고 있다.

직장에서는 어떤 이와는 멀어지고 어떤 이와는 가까워졌다.

사람과의 관계가 그랬다. 멀어진 사이는 돌아오지 않고 조금씩 천천히 가까워진 사람이 남았다.

하지만 난 각별히 친한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퇴근 후에 혼자 보내는 시간이 좋았고,

회사에서 9시간이나 얽히는 사람들과 퇴근 후에도 또 얽히고 싶지 않았다.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학생 때부터 그렇게 살았으니까.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중학교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고,

대학교에 가서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다.

일부러 끊었다기보다는 지금 내 주위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게 옳다는 믿음이 있었던 까닭이다.

게다가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벅찬 일이었으니 말이다.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이다.

5년 동안 함께 지낸 동료 직원들과 헤어지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난 다른 지역에 가서도 그 사람들과 잘 지낼 것이니까 괜찮다.


집을 정리하는 것은 어렵다.

처음이자, 오롯이 내 힘으로 마련한 집이다. 가구 하나, 머그 컵 하나를 살 때도 고민하고

커튼 색깔도 고심 끝에 고르고, 구석구석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내 집이다.

매매 계약 전날에는 떨리는 마음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집을 떠나게 됐으니 큰일이다.

아예 팔아버리자니 왠지 몇 년 후에는 돌아올 것 같고, 월세나 전세를 주자니

다른 이가 내 집에서 지낸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기 싫다.

다른 사람이 살면 집이 망가진다는 다소 개인적인 믿음도 있다.

그리고 이 많은 물건들은 어떻게 할 건가? 발령지에서 숙소를 준다고는 하지만 내 가구와 자전거와 그림과... 고양이는 또 어떻게 하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문득 나 자신이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람과의 관계는 쉽게 정리하고 아무런 생명도 없는 물건을 정리하는 것은 어렵다니?(물론 고양이는 예외다.) 나에게는 사랑도 따뜻함도 남지 않고 그저 차갑게 식어버린,

죽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된 걸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초라함의 다음은 무기력이었다. 난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차일피일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라 했던가. 당장 어떻게든 집을 비워내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른 지역으로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버릴 물건과 안 쓰는 것을 다 정리하니 집 안에 여백이 많아졌다. 공간의 여백으로 기억이 차오른다.

집 안 곳곳에서 아내의 모습이 그려졌다. 함께 식사하고 영화를 보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기억이다.

주방 싱크대 앞 작은 창으로 보이는 플라타너스가 예뻐 보인다고 했었는데.

특별함은 없는 일상이 빈자리에서 피어오른다. 그때 그 감정은 뭘까.

서글픔이란 게 이런 걸까 잠시 고민하다 다시 집 밖으로 나갔다.

지금 이 감정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분노도 후회도 아닌 그 사이 어정쩡한 무언가 머리를 짓눌러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밤마다 걸었다.

어설프게 감정을 정의 내리려 하다 시간만 흘러갔다.

복잡한 감정을 고이 접어 마음 한편에 정리하지 못한 채 그저 내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었다.

이건 그저 변덕이고 짜증이라 치부하고 차가운 밤공기나 들이키며 감정을 식히기만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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