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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쓰파인더 Feb 25. 2023

경찰대학 생활-1

억압속에서 견디며, 애써 좋은 일을 찾았다

경찰대학생이 되었다.

입학식날 한달 사이에 10킬로 이상 살이 빠지고 새카매진 나를 식구들 중에서 엄마만 알아봤단다.

경찰대학생이 되면 무엇이 바뀔까? 우선 입는 옷은 바뀐다.  예비입학 시기엔 기동복이 일상복이었다면 입학식에서의 예복을 시작으로 정복, 근무복을 입고 정식 구성원이 된 것을 실감한다.

경찰대학 입학식_예복 (출처 경찰대학 소개 홈페이지에서)

3월달 첫 인상을 차지하는 건 '졸업식 훈련'이다.

매년 3월 전후 있는 경찰대학 졸업식 행사는 대통령 참석 행사라 의전과 행사 준비에 1달 이상을 투입한다.  

제식 훈련, 행진 연습을 반복하며 '각'을 만드는데 한달여를 보낸다.


기숙사 생활과 학사일정, 각종 모임이 신입생의 일상이다.

동기하고만 생활하던 예비입학 시기와 달리, 기숙사는 모든 학년이 통합해서 산다. 4학년-2학년-3학년-1학년 식으로 생활실을 배치해 '섹터'라고 부른다.

저녁엔 신입생환영회, 졸업식환송식, 각종 소소한 모임에 출석해 신입생임을 신고한다. 고등학교 동문회, 출생지역 향우회, 선배들이 소개해주는 동아리를 찾아가 둘러보기도 한다.  

저학년이 고학년의 소소한 심부름을 하고 청소-배급품 등을 담당하는 식.  섹터 구성원에 따라 분위기 차이가 많이 난다. 어느 학기 땐 아주 알아주는 엄한(?) 선배들과 사느라 주변의 동정을 한껏 받은 적도 있다.


대학생이니 수업을 받는다. 법학-행정학과 2개의 전공이고 경찰학을 일종의 교양 필수처럼 듣는다. 작은 학교이고 특수 대학이다 보니 오래 된 교수님들이 정해진 교재를 주로 강의하곤 했다.

수업 복장 (출처 : 위와 같음)

가끔은 '아 대학생이니 이런 가르침도 받는 구나' 라는 자극을 받는 순간도 있었다. 열의가 강한 교수님은 곧 다른 대학으로 둥지를 옮기곤 했다.

견고하고 학생수 적으며 연구 여건이 어려운 대학이다 보니 교수님들에겐 어려움이 있다.

수업 열의가 높기 어려웠다.  사람의 에너지엔 한계가 있고 창의와 열의는 자유로울 때 발전한다. 내무생활에 움츠러들고 규율과 제재를 공부는 후순위가 되기 쉽다.


"'경찰대학'이 '경찰'이냐 '대학'인가"라는 해목은 논쟁이 있다. 규율과 절제 vs 자율과 창의에 대한 의견 이다. 30년이 다 지난 지금도 그 얘기를 한다. 제자리인 셈이다.

따질 것도 없이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생을 모집해 대학교육을 운영하니 당연히 대학이다.

경찰로서 살아가는 건 졸업 후에 실컷 익힐 일이다.  규율을 강조하는 건 '통제'해야 하는 이의 주장이다.

대학생으로 살아가는 건 살면서 그 시기 밖에 못한다. 문신하고 피어싱하고 잔디밭에서 낮술을 못할 지언정, 고교생에서 벗어나 대학생으로 정신적 토대를 키우도록 해줘야 한다.

지적 자극과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줘야 한다.

3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비슷한 학기 구성과 연구 교육의 인프라가 크게 바뀌지 않은 것을 보며, '경찰대학은 경찰인을 양성하는 곳이지 꼭 대학이라고 보기 어려워'라는 논리의 폐해를 본다.

 

3주간의 짧은 예비입학이 모두가 겪는 고생이라면 입학 후 생활은 내무생활, 수업, 동아리 같은 방면에서 개성과 성격이 드러난다. 단체생활을 긍정적으로 이겨내는 근기, '생활 잘한다'고 칭찬받는 자기관리 부실한 편이었다. 뭘해도 어설펐다. 운동을 잘하고 리더쉽이 있는 이, 공부를 잘하고 영민한 이, 쾌활하고 주위와 잘 어울려 즐겁게 하는 동기들이 빛났다. 어떤 이들은 남의 시선이나 억압에 쫄지 않고 자기 중심이 강한 이들도 있었다.


단체생활에선 축구 잘하는 게 짱인데, 난 거리가 멀었다. 구기 운동은 젬병인데 반해 장거리 달리기는 곧잘 하는 편이라는 것도 알았다. 체육대회엔 산악달리기(?)를 주로 출전했다.


동아리도 있다. 동아리는 '경찰행정학회'와 '산악부'를 들었다. '학회'는 특별한 의무 없이 책읽고 이야기하는 모임이라 시간 남는 동아리방에서 수다떨고 담배피고 숨어있는 공간이었다. '산악부'는 예비입학을 치루며 바닥을 길 때 카리스마의 화신 처럼 보였던 훈련단 선배들이 주로 산악부 소속이어서 선망하는 마음으로 가입했다.  절도 있는 남성에 대한 선망과 자유로운 대화 속에서 편안함이라니, 항상 같이 갖기 어려운 것들을 한꺼번에 가지려 한다.


축제도 한다. 작은 대학이지만 구색을 갖추려고 쌓아올린 전통이다.  10월쯤 동아리들이 준비한 연극, 연주 등 공연도 하고 전시도 한다. 가수를 초청해 공연도 본다.  

가판대를 운영하며 맥주, 막걸리, 안주를 파는 식당도 운영한다.

여자친구, 가족, 친구들을 초청해 함께 구경하고 걷곤 한다.

대학의 축제라기 보단 군대 위문 행사 같은 느낌이었다.


눈에 띄거나 나서지 않고 관찰자 같은 느낌으로 학교 생활했다. 마음에 드는 수업을 잘 듣고 교수님들과 대화하는 것이 약간 남들보다 덜 어설펐다. 이 때 관심보여주신 행정학 정윤수 교수님이 명지대로 옮기셨고 시간이 훌쩍 지나 박사 과정 입학을 권유해 지도해주셨다.

대부분의 일상을 훈련, 규율, 바른 생활, 기강의 다잡기, 요즘 태도가 불량 등 단어에 몸과 마음이 굳으면서도 억지로 쥐어짠 대학의 낭만과 자유와 성숙을 한톨 한톨 씹는 경찰대학 생활이었다.

좀 머리가 크고 마음이 열리는 3~4학년 시간은 다음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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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1. 30년 만난 120명의 동기 중 5명(?) 정도가 재학 중 다른 길을 택했다. 졸업 후 20여명 정도는 퇴직해 기업, 학교에 가거나 자기 사업을 한다. 3명 정도는 몸이 아파 퇴직하거나 쉬고 있다. 15여명 정도가 올해까지 총경 승진을 했다.


덧2. 당시 경기 용인에 있던 경찰대학은 충남 아산으로 이전했다. 경찰 기관은 황무지에 신설했다가 발전해서 도심지가 되면 지킬 힘은 없다. 다시 황무지로 간다.


덧3. 요즘 경찰대학 생활도 그렇게 권위주의에 짓눌리는지 학생 내부의 문화는 알수 없다. 그래도 교내에서 사복입는 날도 있어 보이고, 학생 활동도 전보다 다채로워보인다. 바깥 사회의 눈부신 발전에는 못 미치겠으나 그 나마 다행이다. 요즘 대학생 생활을 소개하는 게시글 : https://www.police.ac.kr/police/police/html/liv/sch/dailySchedule.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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