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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쓰파인더 Mar 10. 2023

경찰대학 졸업

경찰대학이 내게 남긴 것, 진짜 졸업해야 할 것 

3학년때부턴 학교 생활에 요령이 생기고, 좀더 마음 편해진다. 4학년이 있지만, 좀 말년병장 느낌?

게다가 4학년 여름방학 때 교통사고를 크게 겪어, 3학년 시기가 리즈였던 셈.


3학년을 올라며 예비입학 훈련단을 했다. 강철같은 선배님들의 멋진 폼을 따라해보려 했지만 어설펐다. 

신입생들 앞에서 유치할지언정 농도깊은 시간을 보낸 것이 학교 생활의 마디가 되었다.


딱히 무엇을 해야겠다는 목표없이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술을 마시며 보냈다. 비 오는 옥상에서 차양을 치고 진달래를 담아둔 술을 마시고 동기들과 낄낄대기도 했다. 밤새 커피포트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주제 없는 얘기와 웃으며 밤을 보냈다. 대학의 낭만이라기보다 '병영의 추억'같다.


3학년 여름방학 땐 유럽 배낭여행을 갔다. 당시 루프트한자 비행기의 흡연석에 앉아 날아간 얘기를 하면 '말도 안되는 구라'취급을 받는다. ('비행기에서 담배를 피웠다고요? 말도 안되는 소리 마세요')

3주의 짧은 여행이지만 즐거웠다. 남들은 대학들어가서 느끼는 자유를 대학 3학년 여름 방학에 먼 타국에서 실감했다. 아침에 몇시에 일어나 몇시에 자야 하는지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모여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지를 따라야 하는 경찰대학에서는 자유를 발휘할 기회가 부족하다. 


젊었을 땐 무엇을 어찌 해야 하는지 스스로 찾고, 놀아보고 저질러보고 한심한 일도 즐거운 일도 겪어봐야 하리라.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대학을 졸업했으니 '청춘의 불완전 연소'같은 합리화했다. 인생엔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다지 않나? 일평생 해야 할 지랄의 총량은 누구에게가 정해져 있어, 어떤 시기를 점잖게 보낸 이가 다 늦어 일탈을 할 때 인용한다. 나를 포함해 경찰대학을 졸업한 누군가 엉뚱한 일을 하면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더니 젊었을 때 덜 놀아봐서 그런가보다'라고 이해하려 한다.   


재미있게 마감할 수 있었던 4학년 중간에 교통사고를 겪어 고생을 했다. 비오는 도로를 뛰어 건너다 택시에,, 왼쪽 다리 골절을 입었다. 4학년 마칠 때까지 걷고 달리는게 쉽지 않았다. 단체 생활에서 몸이 느리면 나는 물론, 동료들도 고달프다. 많이 배려받았지만 대학 말년, 어렵게 졸업했다. 


각종 졸업 요건을 채우는게 쉽지 않았다. 운전면허를 계속 떨어져 면허 못 따 졸업 못한 유일한 사람이 될 뻔 했다. 졸업 전 논산훈련소를 입교해 형식상 '입대' 하는데 훈련소에서도 어기적 거리며 행군과 교육을 따라다녔다.


120명의 작은 집단이지만 성취욕이 높은 이들이다 보니 개성들이 다양했다. 고시, 대학원, 외국어, 운동, 학교 교과 등 각자의 목표를 열심히 살아가는 이도 있었다. 학교 생활을 재밌게 하려는 이도 있었다. 선배들 중에는 '학교의 규율과 위상을 수립'하는 것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맨날 후배들 불러서 기합 주는 것이 많은 일과를 차지한 사람들이다.


남성 중심의 480명 집단(지금은 400명, 남녀 비율도 변했다)이니, 용모를 단정하고 주변을 깨끗히 하며 시간을 지켜 함께 움직여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왜 이불을 각이 선명하게 개야 하고, 옷장의 옷의 어깨선이 맞아야 하는지 이유가 있을까? 20살 23살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다고 구두를 닦고 우유와 신문을 갖다드려야 하는 걸까?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런 규율에 목소리를 높이고 후배들 자주 불러내 혼냈던 이들은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술 자리에서 빈축을 듣는다. 예전 저 양반 어마무지 무서웠는데 생각하며 격세 지감을 느낀다. 


20대 젊은이들, 야망과 에너지를 품은 이들을 가둬서 먹이고 뒹굴게 하려면 집단의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 복종하고 규율을 지키며 통제를 견뎌게 하기 위해 '이뤄야 할 사명'을 주입한다. 경찰대학에게 '당위'는 부패와 무능력으로부터 '경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단의 목표'는 극복할 타자를 설정할 때 더 효과적이다. '경찰 개혁'의 목표는 '검찰의 예속을 극복하고 수사권을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4년의 생활을 마치고 1997년 3월 졸업을 했다.  


나이가 50이 되었지만, 여전히 '경찰'이라는 정체성 이전에 '경대생들'이라고 지징하는 이 많다. 경찰대학이 내게 무엇을 주었나, 남겼나 생각한다. 


경찰대학을 왜 만들었는지 연혁을 찾다가 전자정부 공동추진위원장 안문식님의 글을 읽었다(https://preview.kstudy.com/W_files/kiss61/1m301623_pv.pdf) 1970년대말 당시 경제기획원의 요청에 따라 '경찰수사의 과학화'를 목표로 연구한 대안이 육군사관학교를 모델로 한 경찰대학의 신설, 우수인재를 통한 수사자율성 확대 등이었다. 이 안을 1980년 국보위에서 채택해 개교한 것이다.


경찰대학을 사관학교에 비교하는 인식, 병영형태의 학교 생활은 역사적-제도적 근거가 있었다. 


탁종연(2007)는 현장 경찰관569명에게 설문한 바, 구성원에 대한 인격적 대우와 청렴성에 기인했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높고 폐지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우세하다고 했다.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8862034)


1980년 개교 후 43년, 경찰은 개혁했는가? 수사권 독립의 법규는 일정 부분 개정했지만 법의 정신이 발휘하고 있는가? 경찰대학은 엘리트 기득권의 매개인가? 


나의 입학 후 30년 소감은, 법집행 현장의 청렴, 역량의 향상에는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경찰대학만의 역할은 아닐 터이고 시대의 진보와 함께 나이진 것이리라. 수사권 독립은 경찰의 자질 문제이라기보다 국가의 권력 구조와 엘리트 부패 해소의 쟁점이다. 경찰대학이 이 쟁점 해소에 얼마나 기여했을지는 모르겠다.


마음이 더 쓰이는 것은 '경찰대학을 졸업한 나는, 우리의 삶은 어땠나?' 이다. 한 청년이 진로를 선택해서 대학을 졸업해 살아간 세월을 평가하는데, '그 대학이 사명을 다했는가'만 질문해선 안된다. 얼마 전 동문회에서 한참 후배의 부고 문자를 받았다. 개인적으로 모르는 이이지만,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뉴스도 지인의 SNS로 알았다. 무엇이 그를 힘들게 했나, 연 100명이 졸업하는 작은 대학이 스스로 생을 달리하는 이야기를 너무 자주 겪는다. 


조직과 학교의 사명보다 우리 자신의 안녕과 행복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변곡점에 들어선 이제 느낀다. 

하지만 1997년 3월 졸업 당시엔 두려우면서도 설레임, 기대감으로 사회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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