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면 그럴껄 그랬다. 남들 가는 건 이유가 있다. 하산길 한계령 왕복은 넘 힘들었다.
5시30분 한계령 휴게소에서 백팔 계단을 오르며 산을 올랐다.
배나오고 무거워진 몸, 등산 초입에서 헉헉 거리고 땀을 쏟는다.
설악산은 울끈불끈, 거센 봉우리들이 촤르르륵 펼쳐져 있다. 기상이 느껴진다.
지리산을 좋아해 매년 가는데, 설악산도 준엄한 매력이 있다.
서북능선 코스는 물이 없다. 500미리짜리 물 4병, 커피를 따로 가져갔는데, 부족했다. 거의 2킬로마다 500밀리 정도 필요하더라. 오르는 길은 서늘하고 하늘도 맑았다. 오르는 재미가 있었다.
서북능선은 공룡능선, 용화장성, 울산바위까지 설악의 여러 봉우리를 보면서 걷는 길이라 풍광이 수려하다. 올라가는 길은 체력도 남고, 공기는 서늘했기에 고개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코스도 재밌었다.
11시 대청봉에 올랐다. 생애 4번째 대청봉
중청대피소에서 가져간 빵, 커피, 떡을 먹고 쉬다가 11시 30분 하산길을 시작했다.
중청에서 한계령삼거리를 향해 가는 3킬로는 경사가 완만한 흙길이다. 어느 쪽을 향하든 큰 부담없이 편하다. 그 곳을 지나면 약 3킬로 정도 너덜바위길을 걷는다. 여기서 체력이 엄청 깎였다. 올 때도 힘들었는데 하산길, 오후 2시의 햇볕을 맡아가며 걷다보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머리가 뜨거워졌다.
별수 없는 선택이었다. 길을 택한 이상 끝까지 가야 한다. 수가 없지 않나. 3시간이 넘는 고행길을 견디고 무사히 길을 끝내야 한다. 어차피 산행이라는 게 고생을 자처하며 내몸을 새로운 곳에 처하게 하는 것 아닌가?
무의미한 짜증을 내지 않고자, 여러 생각을 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 3년 후 어디에서 무얼할지 상상해보려했다. 웃기게도 앞날을 계획하는게 아니라 과거를 돌이키게 되더라. 경찰대학을 가지 않았더라면, 경찰을 일찍 벗어났더라면, 경찰청에서 어떤 전략을 세웠더라면, 경찰청 이후 연구소에 온 것에 대해서도.
거의 유일하게 후회, 반성하지 않는 것이 연구소에 온 것이다. 여전히 지식이 일천하지만, 내가 무지하다는 것을 알게 해줬다. 이 경험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난데'하는 잘나가는 엘리트 경찰 관리자로 자기확신에 차, 스스로와 남들을 피곤하게 했을 것이다. (지금은 안 그렇다는 건 아니다)
돈도 많고, 잘 벌며, 똑똑하고, 사회적인 영향력도 많고, 좋은 분들을 사귀며 기쁜 에너지를 주고 받고 싶다는 거대한 희망을 부풀려봤다. 폭염에 익어가는 피부의 고통을 잊으려 생각을 하염없이 어어봤는데, 거의 '다시 태어나는것 밖에 없지 않나' 싶었다. 요즘 웹소설의 회귀 빙의 환생 이 아니라면 이번 생은 망한게 아닌가...
어차피 5시간 폭염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고달프니, 그런 '새로 태어남'의 주제도 계속 곰씹을 수 있었다. 다음 생을 확답받을 수 없다면, 이번 생이나마 다시 태어나는 것에 준하게끔 살아야 하지않을까?
어차피 죽는 삶이고, 이 삶에서 다음을 장담할 수 없으면 삶 속의 단계를 나눠 다음 과정으로 나가가는 노력을 해야 '살아가는'일이리라. 새로 태어남은 몸과 정신을 재구성하는 충격이 필요하다.
8월엔 몸을 다시 만들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을 열심히 하련다. 다른 사람이 된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8월에 몸무게를 77킬로까지 줄이고, 생각해둔 글을 많이 써 주변에 나눠야 겠다. 재미와 의미를 찾기 어렵더라도 필요한 일이다.
고달픈 시간이었지만, 이 마음을 잡아 8월을 살수 있다면 보람있겠다 생각하며 하산했다.
덧붙임. 하산해서 전화기를 켜니, 문자 전화가 수십통,, 속세에서 살아가며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더라. 밤에 혼술로 열폭하며 8월 첫날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