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과 격려 사이에서

by 봄날의꽃잎

“겸손의 이름으로 나를 과소평가하지 말며

격려의 이름으로 나를 과대평가하지 말기.”


짧은 글귀이지만 마음을 오래 붙잡았다. 겸손과 격려, 둘 다 참 좋은 말인데 왜 이토록 마음에 남을까.


국어사전에 따르면 겸손은 자신을 낮추어 남을 높이는 태도를 뜻한다. 그래서 우리는 칭찬을 받으면 습관처럼 “아니에요, 별거 아니에요”라고 대답한다.

격려는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줌을 의미한다. 그래서 중요한 시험을 앞둔 아이에게 “넌 꼭 잘할 거야, 반드시 성공할 거야”라고 흔히 말한다. 두 단어는 따뜻하고 긍정적이지만, 때로는 그 따뜻함이 지나쳐 마음을 무겁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부모로서 그 장면을 자주 경험했다. 누군가 내 아이를 보고 “참 바르게 컸네요”라고 말하면, 나는 얼른 “아직 멀었어요, 집에서는 엉망이에요”라며 손사래를 치곤 했다. 겸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 아이는 자신이 받은 칭찬을 엄마가 흘려보내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아이의 자존감에는 작은 그림자가 드리워졌을지 모른다. 칭찬을 건넨 사람 역시 내 대답에 마음이 무시당했다고 느낄 수도 있다. 사실 그때 필요한 건 부정이 아니라 감사였다. “맞아요, 고맙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는 마음 감사해요.” 이 한마디가 아이에겐 자존감을 세워주고, 상대의 진심에도 화답하는 길이었다.


돌아보면,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특별한 계기도 있다. 어느 날 내가 누군가에게 진심을 담아 칭찬을 건넸는데, 그 사람이 손사래를 치며 “아니에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라며 반복하며 부정하는 모습이었다. 순간 내 마음이 민망해졌다.

좋은 마음으로 꺼낸 내 말이 무시당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깨달았다. 겸손이 지나치면 상대의 진심마저 부정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칭찬은 받는 사람의 것이기도 하지만, 건네는 사람의 진심이기도 하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도 비슷한 순간이 많았다. 학부모가 “원장님 덕분에 우리 아이가 많이 변했어요”라고 말할 때,

나는 늘 “제가 한 건 하나도 없어요. 다 담임선생님 덕분이에요”라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그 말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학부모가 마음 깊은 곳에서 전하는 감사였다. 그 순간 내 대답이 그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었다.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저도 아이의 변화를 보며 정말 기뻤습니다. 함께한 선생님들 덕분이지요.” 이 말은 부모의 진심을 존중하면서도, 교사들의 노고를 인정하는 길이다. 겸손은 자기 부정이 아니라 감사로 이어질 때 더욱 따뜻하다는 것을 배웠다.


격려도 그렇다. 누군가를 북돋아주는 말은 따뜻하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짐이 된다. “넌 꼭 잘할 거야”라는 말은 응원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듣는 이는 “혹시 기대에 못 미치면 어쩌지?”라는 무거움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격려가 반드시 부담만 되는 것은 아니다. 격려가 진짜 힘이 되려면,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

그저 막연히 “넌 잘할 거야”라고 말하기보다,

“네가 그동안 꾸준히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봐왔어. 그래서 네가 잘해낼 거라는 믿음이 생겨.”

이렇게 말해줄 때, 상대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자신의 노력이 인정받았다는 확신을 얻는다. 격려는 추상적인 위로가 아니라, 구체적인 믿음을 담아낼 때 비로소 진짜 용기가 된다.


그래서 이제 나는 겸손과 격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한다.

칭찬 앞에서는 부정 대신 감사로,

격려 앞에서는 무거움 대신 따뜻한 진심으로.


무엇보다도 나는 다짐한다.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지나치게 낮추지 않고,

격려라는 이름으로 나를 불필요하게 과대평가하지 않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그것이 나를 단단하게 지켜주는 길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겸손으로 나를 지우지 않고,

격려로 나를 흔들리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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