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화려한 장면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내게 사랑은 그보다 훨씬 단순하고 깊은 것이다. 바로, 조용히 서로를 이해해주는 것.
나는 늘 바쁘게 살아왔다.
어린이집 일로, 모임으로, 공부로, 나를 부르는 곳이 많았다. 일주일에 다섯 날 이상 외출하는 내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다니냐”며 놀라곤 한다. 하지만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건 집을 든든히 지켜주는
남편덕분이다. 내가 집을 비우는 동안 아이들 챙기고, 저녁 차리고, 집안일을 도맡아 해온 사람. 언젠가부터는 음식에 진심이 되어 양식, 일식, 중식까지 다 집에서 만들어내니 외식이 거의 필요 없을 정도다.
돌아보면 내가 지금처럼 사회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모두 남편의 묵묵한 뒷받침 덕분이다. 대학원에 다니며 수업과 과제를 병행할 때도, 강사 자격증을 따겠다고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야 했을 때도, 책을 내겠다며 밤낮으로 노트북과 씨름할 때도 그는 그저 옆에서 바라봐 주었다.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더 나아가길 응원하는 눈빛을 보내주었다.
2001년 11월 11일,
결혼식을 올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 동안 손에 꼽을 정도밖에 다투지 않았던 것도 결국은 서로에 대한 이해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다툼조차도 내 고집에서 비롯된 것들이었으니, 남편의 인내와 배려가 없었다면 이렇게 오래도록 평화로운 길을 걸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이해가 필요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남편은 원래부터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조용히 집과 회사를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좋아했다. 그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좀 더 세상 밖으로 나가면 좋으련만, 늘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아 속이 터지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바로 그 성향이 나를 도와줄 수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밖에서 분주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건, 남편이 묵묵히 집을 지켜주었기 때문이었다.
또 남편은 고집이 세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밀어붙인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도 굳이 짚어내며 바른말을 한다. 처음엔 그런 모습이 화가 나고, 괜히 분위기를 무겁게 만드는 것 같아 짜증도 났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니 그 고집 속에서 신뢰가 보였다.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원칙을 지키는 태도, 듣기 불편해도 진실을 말하는 그의 성격이 결국 우리 가정을 단단히 지탱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글귀가 더 깊게 다가왔다.
“사랑은 조용히 서로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요란하지 않아도 된다. 남편이 내 삶을 이해해 준 것처럼, 나도 그의 성향과 고집을 이해하며 함께 살아왔다.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불편했지만, 그 모든 면까지 품어낼 수 있었기에 지금까지 우리가 이어져 온 것이 아닐까.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다 자라고, 우리의 머리에 흰빛이 내려앉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지금처럼 기억하고 싶다. 남편이 내게 보여준 묵묵한 지지, 그리고 내가 그를 바라보며 지켜낸 작은 이해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조용히 서로를 이해하며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