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쉼표이다

by 봄날의꽃잎


지금 나에게 가을은 쉼표 같은 계절이다.


어린 시절의 가을은 쉼표가 아니었다.

운동회와 소풍, 낙엽 밟기와 공 차기로 가득했던, 마치 느낌표가 연달아 찍힌 계절이었다.

교문 앞에 걸린 만국기와 운동장에 울려 퍼지던 화약총 소리, 도시락 뚜껑을 열 때 퍼져 나오던 참기름 향은 모두 나의 가을을 흥분과 설렘으로 물들였다.

그때의 나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고, 가을은 늘 뛰고 웃는 계절이었다.


청춘의 가을은 달랐다. 쉼표는커녕 줄임표처럼 흘러갔다.

공부와 일, 결혼과 육아, 해야 할 일들이 쉼 없이 이어졌다.

창밖으로 단풍이 붉게 물드는 것을 알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붙잡을 여유가 없었다.

마트에서 귤 한상자를 들고 와 거실에 두는 것으로,

도로변 코스모스를 스쳐보는 것으로,

그해 가을을 대신했다.

어느새 “벌써 겨울이네” 하고 중얼거리며

가을을 놓쳐 버린 해가 많았다.


지금의 나는 다르다.

가을바람이 불면 걸음을 멈춘다.

낙엽 하나에도 이야기를 담아 바라보게 된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은 끝이 아니라, 흙이 되어 다른 생명을 키우는 시작이라는 것을 이제 안다.

친구와의 헤어짐도 가을이였다. 눈물로 젖어버린 가을은 그렇게 내곁에 있다.

붙잡으려 했지만 놓아야 했던 인연.

그들이 떠난 자리에도 삶은 이어지고,

그 흔적은 내 안에 남아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낙엽이 쌓여 땅을 풍요롭게 하듯,

사람과의 이별도 결국 내 삶의 밑거름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가을은 뜀박질이었고,

젊은 시절의 가을은 숨가쁨이었지만,

지금의 가을은 멈춤이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

쉼표가 있어야 문장이 이어지듯,

가을이 있어야 내 삶도 균형을 찾는다.


나는 오늘도 가을의 쉼표 위에 멈춰 서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래서 가을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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