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향적인 내향인, 질문 앞에 서다

by 봄날의꽃잎


외향적인 내향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두 얼굴을 지니고 사는 일이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웃고 떠들 수 있지만, 낯선 상황이 닥치면 안으로 움츠러들고 금세 지치곤 한다. 겉으론 외향인 같아 보여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내향적인 두려움과 고요가 공존한다.

나는 늘 그 경계에서 살아왔다.


집합교육을 받을 때, 강사가 갑자기 질문을 던지는 순간이면 내 몸은 먼저 반응했다. 심장은 두 배로 뛰고, 뺨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눈길은 허공에서 갈 곳을 잃고, 나는 본능처럼 고개를 떨구었다. 책상 위의 글자라도 뚫어져라 보며, 혹시 눈이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다. 마음속으론 수없이 외쳤다. “제발 나만은 지목하지 말아 주세요.” 손끝이 차갑게 굳고, 뒷덜미는 뻣뻣해졌다. 질문 하나가 나를 그토록 불안하게 만들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내가 강사로서 사람들 앞에 선다. 강의가 어느 정도 흐르면 질문을 던지곤 한다. “여러분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나요?” 그 순간 강의실은 고요 속에 얼어붙는다. 수강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책상으로 쏟아지고, 동시에 고개가 내려간다. 눈빛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작은 웅성거림마저 멈춘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나는 예전의 나와 마주한다. 고개를 숙인 채, 불안에 떨던 그때의 내가 바로 눈앞에 앉아 있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던질 때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대답을 재촉하지 않고, 누군가 머뭇거리면 기다려준다. 답이 나오지 않으면 웃으며 스스로 정리해준다. 그리고 때로는 이렇게 말한다.


“저도 이렇게 앞에서 강의를 하지만 사실 강의 들으러가면 이런 질문 던지는 강사가 제일 부담돼요.”


그럼 강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긴장이 풀리며 다 함께 웃는다. 그 순간 나는 강사와 수강생 사이의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외향적인 내향인으로서 나는 사람들 앞에서 활발히 말할 수 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질문 하나에도 긴장했던 나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고개를 숙이는 이들의 침묵이 이해된다. 그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낯선 상황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두려움이다.


50대가 된 지금, 나는 안다.

질문이 두려움이었던 시절이 있었기에, 이제는 그 두려움을 이해로 바꾸어낼 수 있다는 것을.

예전엔 질문이 부담이었지만, 지금은 배려를 담아 질문을 건네는 사람이 되었다. 내 서툼과 불안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나이 들어 얻은 가장 큰 배움이다.

외향적인 내향인으로 살아가는 나는, 오늘도 활발함과 고요함 사이를 오가며 그 두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로 조금씩 자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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