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며칠전 모임 자리에서였다.
다들 아이 이야기로 웃고 떠드는 평범한 시간이었다.
한 지인이 이런 말을 꺼냈다.
“요즘 초등2학년 애들이 요망지더라니까.
근데 담임이 마흔은 넘어보였는데,
그 나이에 애들 보는 건 아닌 것 같더라.
그 시대에 교대 들어가려면 공부 진짜 잘했을 텐데,
그 실력으로 애들 보는 게 좀 불쌍하더라.”
그 말이 내 귀를 스치는 순간,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녀는 내 아들 둘이 교대에 다니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오십이 넘은 지금도 아이들과 하루를 보내는 원장이다.
순간,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웃고 있었지만, 속에서는 미세한 파문이 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별말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 걸까.
예전에는 그냥 웃으며 넘겼을 텐데,
요즘 들어 나는 유난히 이런 말들에 뾰족해진다.
별것 아닌 말에도 찔리고, 괜히 서운하고,
내 마음이 예전보다 좁아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스쳤다.
‘혹시 우리 아들들도 무시당하고 있는 걸까?’
내 아이들이 소중하면 남의 아이도 소중한 법인데,
왜 자기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듯 이야기할까.
그 태도가 나를 더 피곤하게 했다.
사실 나는 두 아들과 친하게 지내지만,
하나에서 열까지 다 공유하는 사이는 아니다.
서로 믿지만, 간섭하지 않는다.
공부는 본인이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나는 묻기보단 들어주는 부모로 살아왔다.
아이들이 먼저 말하지 않으면 굳이 캐묻지 않는다.
그게 우리 가족의 방식이었다.
그래서일까.
다른 부모들이 자녀의 세세한 이야기까지 나누는 걸 보면
가끔은 내가 부족한 엄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왜 저렇게 못할까.’
그런 생각이 스치면 마음 한켠이 조용히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곰곰이 돌아보면,
그건 무심함이 아니라 신뢰의 다른 이름이었다.
내가 믿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워왔을 뿐이다.
그날의 말은 분명 나를 흔들었다.
나를 향한 게 아닐 수도 있는 한마디였는데,
그 안에서 나는 괜히 작아지고, 내 길을 의심했다.
좋은 엄마인가, 좋은 어른인가,
내가 걸어온 길은 괜찮은가
그런 생각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알겠다.
그건 그 사람의 말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이 이미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흔들려도 부딪히던 날들이 있었던 거다.
그래서 그 말이 더 깊이 들어왔던 것뿐이다.
지금은 그날의 말을 담담히 떠올린다.
결국, 그 흔들림이 나를 다시 세웠다.
남의 시선에 맞춰 있던 마음을
조용히 내 자리로 되돌려 세웠다.
그게 바로 내가 살아온 방식이고,
나를 단단하게 만든 길이었다.
오늘의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