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해마다 같은 자리에 오지만
사람마다 다른 얼굴로 기억되는 날이다.
누군가에게는 설렘이고,
누군가에게는 분주한 하루이며,
아이들에게는
1년 중 가장 오래 기다린 밤이다.
거리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집 안에 트리가 자리 잡으면
아이들의 시간은 유난히 더디게 흐른다.
크리스마스 이브,
누군가가 다녀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나로
하루가 길어진다.
내가 어릴 적 크리스마스는
지금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트리도, 큰 선물도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달력에 표시된 하루,
라디오에서 겨울 노래가 조금 더 흘러나오던 날.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괜히 들뜨는 기분이 남아 있었다.
그 시절 크리스마스는
잘 살았는지를
조용히 돌아보게 하는 날이기도 했다.
잘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지나갈 것 같았던
묘하게 긴장되는 하루.
그리고 지금,
엄마가 된 나는
그 계절을 아이의 얼굴로 다시 마주한다.
“엄마, 저 오늘 괜찮았지요?”
아이의 질문은
선물을 바라는 말 같지만
사실은 다르다.
오늘의 나를
엄마가 어떻게 바라보는지 묻는 말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아이들은
괜히 더 조심스러워진다.
작은 실수에도 눈치를 보고,
자기 마음속에서
하루를 다시 세어본다.
누군가가
자신의 하루를 들여다보고 있을 것 같은
그 믿음 때문에.
엄마인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조금 조심스러워진다.
아이에게
착해야만 사랑받는다는 기억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다.
아이의 하루에는
참은 순간도 있고,
괜히 울컥했던 마음도 있고,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도 있다.
그래도 아이는
자기 몫의 하루를
끝까지 살아낸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한데.
그래서 나는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설명해주고 싶다.
누군가는
착한 아이만 찾는 게 아니라,
오늘 하루를 애써 건너온 마음을
보고 간다고.
어쩌면 크리스마스의 선물은
보상이라기보다
위로에 가깝다.
“잘했어”보다는
“수고했어”라는 말에 더 가까운.
아이를 재우고 난 밤,
트리 불빛 아래서
엄마인 나 역시 한 해를 돌아본다.
잘한 날보다
버텨낸 날이 더 많았던 시간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아이 곁에 서 있었던 나에게도
그 밤은
조용히 다녀갔을까,
문득 생각해본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나는 아이의 양말뿐 아니라
내 마음에도 작은 선물을 하나 놓아둔다.
올해도 잘해냈다고,
충분히 애썼다고.
크리스마스는
착한 아이에게만 오는 날이 아니라
애쓴 마음을
잠시 쉬게 해주는 밤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