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착한 아이 말고, 애쓴 아이

by 봄날의꽃잎


크리스마스는

해마다 같은 자리에 오지만

사람마다 다른 얼굴로 기억되는 날이다.

누군가에게는 설렘이고,

누군가에게는 분주한 하루이며,

아이들에게는

1년 중 가장 오래 기다린 밤이다.


거리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집 안에 트리가 자리 잡으면

아이들의 시간은 유난히 더디게 흐른다.

크리스마스 이브,

누군가가 다녀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나로

하루가 길어진다.


내가 어릴 적 크리스마스는

지금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트리도, 큰 선물도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달력에 표시된 하루,

라디오에서 겨울 노래가 조금 더 흘러나오던 날.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괜히 들뜨는 기분이 남아 있었다.


그 시절 크리스마스는

잘 살았는지를

조용히 돌아보게 하는 날이기도 했다.

잘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지나갈 것 같았던

묘하게 긴장되는 하루.


그리고 지금,

엄마가 된 나는

그 계절을 아이의 얼굴로 다시 마주한다.


“엄마, 저 오늘 괜찮았지요?”

아이의 질문은

선물을 바라는 말 같지만

사실은 다르다.

오늘의 나를

엄마가 어떻게 바라보는지 묻는 말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아이들은

괜히 더 조심스러워진다.

작은 실수에도 눈치를 보고,

자기 마음속에서

하루를 다시 세어본다.

누군가가

자신의 하루를 들여다보고 있을 것 같은

그 믿음 때문에.


엄마인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조금 조심스러워진다.

아이에게

착해야만 사랑받는다는 기억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다.


아이의 하루에는

참은 순간도 있고,

괜히 울컥했던 마음도 있고,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도 있다.

그래도 아이는

자기 몫의 하루를

끝까지 살아낸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한데.


그래서 나는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설명해주고 싶다.

누군가는

착한 아이만 찾는 게 아니라,

오늘 하루를 애써 건너온 마음을

보고 간다고.


어쩌면 크리스마스의 선물은

보상이라기보다

위로에 가깝다.

“잘했어”보다는

“수고했어”라는 말에 더 가까운.


아이를 재우고 난 밤,

트리 불빛 아래서

엄마인 나 역시 한 해를 돌아본다.

잘한 날보다

버텨낸 날이 더 많았던 시간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아이 곁에 서 있었던 나에게도

그 밤은

조용히 다녀갔을까,

문득 생각해본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나는 아이의 양말뿐 아니라

내 마음에도 작은 선물을 하나 놓아둔다.

올해도 잘해냈다고,

충분히 애썼다고.


크리스마스는

착한 아이에게만 오는 날이 아니라

애쓴 마음을

잠시 쉬게 해주는 밤이었으면 좋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