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내가 좋아하는 것

by 봄날의꽃잎


비가 오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친구들이 먼저 문자를 보내온다.

“비 오는데, 너 생각났어.”

“오늘 같은 날씨 좋아하잖아.”

그 문자를 읽으며

괜히 웃음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날씨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이렇게 남아 있다는 게

조용히 마음을 풀어준다.


가끔은 나도 궁금해진다.

나는 왜 비가 좋아졌을까.

특별히 떠오르는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비 오는 날에 유난히 행복했던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생각해보면 답은 늘 같은 데에 있다.


비 소리.

비가 처음 떨어질 때의 소리는

늘 조심스럽다.

아스팔트에 톡,

창문에 톡,

마치 먼저 와도 되는지 묻는 것처럼.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하루가 갑자기 느려지기 시작한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비 소리는 리듬을 만든다.

규칙적인 듯하면서도

완전히 같지는 않은 소리.

그 반복이 머릿속을 차지하던 생각들을

하나씩 밀어내 준다.


빗소리는 크게 말하지 않는다.

속삭이듯,

하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그 꾸준함이 사람을 안심시킨다.

괜찮다고 말해주지는 않지만

괜찮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해주는 소리 같다.

창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비 소리는

집 안과 바깥을 부드럽게 나눈다.

밖은 젖어 있고, 안은 안전하다.

그 경계 안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듣고 있기만 해도

시간이 흘러간다.

비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이상하게 단정해진다.

정리하려 애쓰지 않아도

감정들이 스스로 자리를 찾는다.

말로 꺼내지 못했던 것들,

굳이 이름 붙이지 않아도 되는 마음들이

빗소리에 섞여 조용히 흘러간다.

그래서 비 오는 날에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

소리가 곁에 있어주기 때문이다.


사람의 말보다

훨씬 오래,

훨씬 부드럽게.

비가 오면

친구들은 나를 떠올리고,

나는 창가에 앉아 그 소리를 듣는다.


이 날을 좋아한다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 그래서

비가 좋아진 게 아닐까 싶다.

특별한 이유도,

특별한 기억도 없어도

소리 하나로

마음이 다뤄지는 날이라서.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비가 내려서가 아니라,

그 비 소리가

내 마음을 가장 조심스럽게

다뤄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