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황색 등

내가 좋아하는 것

by 봄날의꽃잎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주황색 불빛이다.

천장에 달린 불이 아니라

방 한쪽에 놓인 스탠드 같은,

굳이 켜지 않아도 되지만

괜히 켜고 싶어지는 그런 불.


카페에 가면

나는 괜히 그 불빛부터 보게 된다.

테이블 위나 벽 한쪽에서

조용히 켜져 있는 주황색 불.

그 불빛 안에 앉아 있으면

이유 없이 마음이 풀어진다.

커피 때문인지, 공간 때문인지

한참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그 빛 때문인 것 같다.


그 불빛 아래에서는

괜히 서두르지 않게 된다.

말도 느려지고,

생각도 급해지지 않는다.

지금 이 시간을

굳이 의미 있게 만들지 않아도

괜찮아진다.

그래서 집에서도

비슷한 불빛을 찾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거실 불을

완전히 하얀 불로 켜지 않게 되었다.

아주 살짝,

주황빛이 도는 조명으로.

하루가 끝나갈 즈음

집 안의 불을 하나둘 끄고

그 불빛만 남겨 두면

공기가 달라진다.


방이 어두워진다기보다

오히려 마음이 먼저 밝아지는 느낌.

이제는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형광등 아래에서는

괜히 자세를 고쳐 앉게 된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도

정리해야 할 것 같고,

가만히 있으면

게으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빛은 늘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 같다.

하지만 주황색 불빛은 다르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 켜져 있을 뿐인데

내 마음이 먼저

속도를 늦춘다.

등 아래 놓인 책도, 컵도,

테이블 위의 잡다한 물건들도

조금씩 부드러워 보인다.


주황색 불빛은

공간의 선을 흐리게 만든다.

사물의 경계가 또렷하지 않아지고,

그만큼 생각의 경계도 느슨해진다.


오늘 있었던 일들이

갑자기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고,

꼭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괜찮아진다.


나는 하루가 유난히 길었던 날에

그 불빛을 더 찾게 된다.

사람들 속에서

말을 많이 했던 날,

괜히 웃어야 했던 날,

나답지 않게 버텼던 날.


그런 날에

주황색 스탠드를 켜면

누가 대신 말해주는 것 같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도 돼.”

그 불빛 아래에서는

괜히 과거를 되짚지 않아도 되고,

내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의 나는 그냥 오늘의 상태로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

잘했는지, 부족했는지

평가받지 않는 시간.

그래서 나는 주황색 불빛을

‘밝히는 불’이 아니라

덮어주는 불’이라고 생각한다.


환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조용히 감싸 안는 빛.

부족한 것도, 흐트러진 것도

그대로 두어도 괜찮다고

말없이 알려주는 빛.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려 보면

대부분 이런 것들이다.

나를 더 나아지게 만들겠다고

다그치지 않는 것,


대신 지금의 나를

그대로 허락해주는 것들.

주황색 등도 그중 하나다.

눈에 띄지 않지만

늘 같은 자리에 있고,

필요할 때 조용히 켜질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그래서 오늘도 나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그 불빛을 켠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이 불빛 아래에서

나는 비로소

조금 느슨해지고,

조금 솔직해지고,

조금 더 나로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주황색 등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