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나는 부끄러움이 많았던 아이였다.
“이거 누가 해볼래?”라는 질문이 교실에 떨어질 때마다 손은 무릎 위에서 몇 번이나 들렸다가 내려왔다.
올릴까 말까, 그 짧은 순간에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틀리면 어쩌지, 웃음이 되면 어쩌지.
결국 시간은 늘 나를 지나쳤고 나는 제자리에 남아 있곤 했다. 앞에 나와 이야기해야 할 때면 말보다 얼굴이 먼저 반응했다. 볼이 달아오르고 귀까지 빨개져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부끄러움을 숨기지 못하는 아이였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부끄러움이 가득하다.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익숙해질 법도 한데 좀처럼 그렇지 않다. 다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나서야 하는 상황들이 생겼을 뿐이다. 용기가 생겨서가 아니라
책임이라는 이름 앞에서 한 발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발표라도 있는 날이면 밤이 길어진다.
자료를 고치고 또 고쳐도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혹시 말을 더듬지는 않을지, 표정이 굳어버리지는 않을지 생각은 잠보다 먼저 깨어 있다.
그 밤은 준비의 시간이기보다 내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에 가깝다.
그런데 문득, 이렇게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온 내가
정작 내 아이들의 부끄러움은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들이 망설이거나 사람들 앞에서 조용해질 때면
나는 속으로 조급해했다.
왜 손을 들지 못할까, 조금만 더 자신 있었으면 좋겠다고 쉽게 판단해버렸다.
나도 여전히 떨고 있으면서 말이다.
생각해보니 그건 아이들을 위한 걱정보다
내가 지나온 시간을 아이들은 겪지 않기를 바라는
조급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직 내가 다 품지 못한 내 부끄러움을
아이들 앞에서는 고쳐야 할 성격처럼
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깨닫는다.
아이들의 부끄러움 속에서 나는 여전히 내 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을.
손을 들기 전의 망설임,
말을 꺼내기까지의 침묵,
그 모든 장면이
사라지지 않은 나의 마음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된다.
부끄러움은 숨겨야 할 감정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비로소 자리를 찾는 감정이라는 걸.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부끄러움은 고쳐야 할 단점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지키며 세상과 거리를 재는 방식이라는 걸.
그래서 이제는 아이들을 보며 다짐한다기보다
아이들을 통해 나부터 다시 배우기로 한다.
부끄러움을 없애려 애쓰지 않고, 그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 조용히 인정해보는 연습을. 아이들이 망설이는 그 짧은 순간, 손을 들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는 시간 속에서 나는 예전의 나를 본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 아이를 재촉하지 않기로,
그 마음을 재촉하지 않기로
나 자신에게 약속한다.
부끄러움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준비되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신호였다. 나는 그 신호를 무시한 채 계속 나아가라고만 말해왔다는 걸
이제야 인정한다....이제는 알고 싶다.....
부끄러움이 나에게 머물러 달라고 할 때
조금 더 그 자리에 서 보는 법을.
괜찮다고,
지금의 속도도 충분하다고 나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법을. 부끄러움은 숨길수록 커지고 받아들일수록 조용해진다. 아이들을 보며 배운 건 그 단순한 진실이었다.
그래서 오늘 나는 아이들보다 먼저 나의 부끄러움을 끌어안는다. 고쳐야 할 감정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마음으로. 아이들 곁에서, 그리고 나 자신 곁에서
부끄러움을 미워하지 않는 연습을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다정하게 이어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