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프레 향기처럼 아이들은 내 아가들이 되었다

처음 하는 출산, 영원히 하게 될 육아의 첫인상 이야기

by Carol


나의 임신은 감사하게도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여행을 기점으로 이제 아가 엄마 될 맘의 준비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다녀온 미국 여행에서 선물처럼, 게다가 두배로 찾아온 우리 모모와 산타는 처음엔 사실 당황 그 자체였다.

쌍둥이라니.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걱정이 가장 먼저 들었다. 심장소리를 듣고, 점점 콩에서 호두만큼 자라나는 머리 크기를 보면서도 실감하지 못했다.


정작 아 내가 정말 쌍둥이 임신이구나 체감한 건 임신 20주를 넘기던 시기, 이미 배가 눈에 띄게 나오기 시작함과 동시에 속이 체한 듯 더부룩해 아무것도 맘껏 먹지 못하면서 였다. 태동도 이쪽저쪽에서 오고 갔다. 26주부터는 눕든 앉든 서든 한 자세로 30분 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30주가 넘어서는 하루하루 터질 듯 불러오는 배와 움직일 때마다 모서리에 찧은 듯 시큰한 꼬리뼈를 부여잡으며 하루하루 수술 날을 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37주 4일을 채운 9월 4일 아침, 모모와 산타가 세상에 나왔다. 둘 다 건강하게 우는 모습을 확인하고 마취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하루 꼬박 누워 훗배앓이와 싸운 뒤 씩씩하게 일어나 만나본 우리 모모 산타. 그날의 신생아실 유리창을 통해 본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너무 낯설었으니까.


'남들은 아이를 낳자마자 너무 귀엽고 예쁘고 모든 걸 다 주고 싶은 맘이 드는 게 확실한 건가?

그렇다면 나의 모성애에는 분명 큰 문제가 있다.'

아이들을 만나고, 신생아 시기를 보내며 가장 많이 한 생각이었다. 나는 병원 마취과 선생님이 '산모님 원래 긴장을 안 하시냐'라고 물을 만큼 평온하게 수술을 받았고, 입원실에서도 씩씩하게 회복한 산모였다. 조리원에선 긴장하며 신경 쓰느라 위가 고장 나 흰 죽에 간장을 먹으면서 아이 둘을 수유하러 뛰어다닌 열성 엄마이기도 했다. 겉보기엔 아가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평범한 엄마였으리라.


그런데 문제는 내가 우리 아이들이 익숙해지지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울겠지, 또 잠을 설치겠지 하며 초조하고 겁나는 하루가 이어질 뿐, 기계적으로 울면 먹이고 달래고 씻기고 재울 뿐, 세상을 얻은 듯한 행복은 먼 이야기 같았다. '애들이 예쁘니 힘들어도 참을 만 하지?' 하는 주변 어른들의 인사치레에조차 '네' 소리가 목에 걸려 나오질 않았으니.


모모 산타가 어느덧 로아와 제아가 되고도 9개월이 되던 무렵, 육아로 인한 부담감과 피로로(제아는 이무렵까지도 밤잠을 7번 정도 깨곤 했다.) 식욕을 잃고 우울감이 몰려오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지내면 내게도,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겠다는 생각에 주변에 무작정 요즘 힘들다는 이야기를 잡담 늘어놓듯 마구 하고 다녔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대수롭지 않은 듯 풀어놓은 내 마음속 돌덩이가 훤히 보이는 사람들처럼 열심히 우리 집을 드나들고, 내 하루를 챙겨가며 조금씩 조금씩 나를 누르고 있던 우울감을 털어내주었다.


그렇게 우리 로아제아는 첫 생일을 맞았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나와 이 아이들 사이에 무언가 감정의 봉오리 같은 게 생겨났다. 사랑이라기엔 너무 단순하고, 책임감이라기엔 또 너무 건조한.


조금씩 말을 배우고, 하루가 다르게 눈빛으로 표현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봉오리는 점점 둥글고 풍성하게 부풀었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이제 내가 보여주고 표현하지 않아도 본인들의 감정과 기분을 넘치게 쏟아내기 시작한 생동감 넘치는 로아와 제아를 바라보며 비로소 만개하듯 피어나기 시작한 우리 사이의 봉오리에는, 그동안 교감하며 소중하게 쌓아온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염려, 행복, 기대와 애틋함 같은 많은 감정들이 들어있었다.

나는 아마도 이 복합적이고도 봄과 같은, 싱그러운 감정의 봉오리를 모성애 혹은 부성애라고 부르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향을 좋아하고, 취미 삼을 만큼 찾아 즐기는 사람들에게 시프레(Chypre)는 어려운 향이 아니다. 지중해의 사이프러스 (Cyprus)섬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던 프랑수아 코티 사의 '시프레' 를 기원으로 하여 하나의 계열향처럼 자리 잡은 시프레.

하지만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처음 시향 하면 대부분이 베이스에 깔린 이끼 섞인 풀내음을 역하게 느끼기도, 한방약같이 향과는 먼 '냄새'처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시프레 향은 '접할수록 매료되는 향조'라는 것.


대부분의 시프레 향들은 베르가못처럼 깊이감 있는 시트러스 향을 탑노트로 지니고, 이를 풍성하게 풀어내는 재스민, 오렌지 플라워 등의 녹진한 꽃향을 심장에, 이끼와 숲 느낌의 랍다넘 등을 베이스에 둔다. 처음엔 베이스에 강하고 무겁게 깔린 향조에 압도되어 머리 아픈 향, 아저씨 같은 향으로 치부되어버리곤 하지만, 두 번 그리고 세 번 정도 시향 하다 보면 처음에 터지듯 시원하면서도 향긋하게 느껴지는 베르가못의 감칠맛 나는 향기를 마주하게 되고, 뒤이어 향기를 터뜨리듯 풍성하게 피워내는 진하고 향긋한 꽃 향조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고 나면 이 모든 향들의 전개에서 뒤를 받치는 묵직하고도 어색했던 베이스 향조차 고급지고 중성적이며 이국적으로 다가오는 마법이 벌어진다.


적어도 내게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내 아이라고 온 마음 깊이 받아들이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낳았어도 초면(?)인 아이들을 처음부터 미친 듯 사랑하는 게 더 이상했다고 생각한다. 시프레 향기처럼 처음엔 당황스럽고 어색하게, 하지만 결국 걷잡을 수 없이 매력적이고 대체 불가한 존재가 되어준 우리 아가들. 앞으로 이 생기 넘치고 하루하루 기대되는 생명체들이 내게 어떤 향기로 떠오를지 너무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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