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질 안 시킨다면서요..
** 상황재연이 많아서 욕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룰루랄라, 이번엔 일당 30만 원이다~~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한번 갔던 곳이라서 그런지 금세 익숙해진 공장.
별 탈 없이 오전 작업 마치고, 점심 먹고 오후 작업이 시작 됐다.
탱크를 만들다 보니 제품에 번호를 타각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철판에 타각해야 하니 당연히 망치질은 필수였다.
용접사들에겐 이런 말이 있다.
용접사는
망치질 안 시켜.
손 떨면 안돼서
업체 사장이 번호타각 위치를 정해주고
1번부터 9번까지 타각 할 준비를 했다.
1번 쾅!!
2번 쾅!!
3번 쾅!!!
4번, 5번..
“어? 번호가 좀 흐린데?” 업체 사장이 말했다.
“네, 좀 더 깊게 새겨볼게요” 나는 대답했다.
‘더 깊게 새기려면 좀 더 세게 쳐야겠다’
6번... 쾅....!!!
‘악..!’
왼손 엄지를 내려쳤다.
아파서 외마디 소리만 지르고 재빨리 오른손으로 왼손 엄지를 움켜쥐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 상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손을 움켜쥔 채 30초 정도 흘렀을까?
통증이 예사 통증이 아니었다.
용접장갑을 벗으니 하얀 면장갑 위로 빨간 핏자국이 보였다.
‘어? 피가 난다고..?’
면장갑을 벗자마자 벌어진 엄지손가락 살점이 보였고,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빨간 피는 금세 작업장 바닥을 피바다로 만들었다.
그런 내 모습을 발견 한 업체사장과 삼촌이
“야!! 다쳤어??? 봐봐!!”
다급히 외쳤다.
느낌상 이걸 보여주고 있을 시간도 없었고,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 같아서 얼른 다시 면장갑으로 손가락을 움켜쥐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찬물이 손가락에 닿으니 피는 닦여가고 있지만 상처는 점점 더 선명해 보였다.
‘시발.. 손가락 잘린 것 같은데? ’
차로 달려갔다.
나는 트렁크에 비상약을 갖고 다녔다.
그렇지만 비상약이래 봤자 화상연고와 듀오덤이 전부였다.
급한 대로 덜렁 거리는 엄지손가락 살점을 다시 원래자리로 살포시 올려놓고 듀오덤으로 ‘꽁꽁’ 싸맸다.
피가 더 새어 나오지 못하게, 손가락을 한 번 더 움켜쥐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 다시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4개의 눈.
그러나 그건 내 부상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아챌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그런 걱정이 역겨웠다.
씩씩한 목소리로
“이제 괜찮아요! ㅎㅎ 피 안 나요. 근데 타각은 삼촌이
해요 ㅋㅋ 난 그냥 용접 마무리 할래 “
장수말벌 2천 마리가 엄지 손가락을 공격하는 통증을 참고 다시 장갑을 착용하고 용접을 시작했다.
용접봉을 공급하려면 왼손 엄지가 필요하다.
봉을 공급할 수가 없었다. 손가락이 덜덜덜 떨리는 게 느껴졌다.
시계를 확인하니 3시 30분이다.
5시까지만 버티면 된다.
피가 새어 나오는지 중간중간 확인하면서 일을 하다 보니 5시가 됐다.
집에 가기 전 업체 사장에게 나는 진심 없는 사과를 했다.
“아이고, ㅎㅎ 저 때문에 놀라셨죠, 바닥에 피는 닦는다고 닦았는데 ㅎㅎ 에구 죄송해요~^^“
“아니 근데 진짜 괜찮아요? 피가 많이 났는데.”
라며 걱정을 하길래
“아 예예 멀쩡해요 괜찮습니다. 들어갈게요~ 고생하셨습니다~~”
인사를 드린 후 삼촌에게도
“삼촌, 나 손가락 아직 9개 남았으니까 걱정 마요. 나 먼저 갈게요~ 고생하셨어요~“ 하고 재빨리 시동을 켰다.
그리고 출발과 동시에..
참았던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핸들을 제대로 잡을 수도 없을 만큼 아팠다.
집에 오는 내내 울었다.
내 탓을 했다.
‘망치질은 왜 해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응급실로 향했다.
나는 여태 살면서 몸에 수술자국 하나 없이 건강하게 살아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손가락 티눈 수술을 하기 위해 손가락에 마취주사 맞은 것 말고는 수술대에 누워 본 적이 없었다.
간호사가 듀오덤을 떼어내고 상처부위를 유심히 보더니 “찢어진 거 같진 않은데요?” 란다.
난 분명히 봤다. 덜렁거리는 살점을.
“살점이 덜렁 거리길래 다시 붙여놓고 듀오덤으로 감은 건데요”라고 말하자 간호사가 미간을 찌푸린다.
얼마 후 의사가 들어오더니 핀셋으로 살점을 들어냈다.
망치로 또 손을 내려 찧는 고통이었다.
“아, 벌어졌네, 이거 꿰맬게요”
너무 다행인 건 뼈나 손톱이 뭉개진 건 아니었다.
그리고 마취 주삿바늘이 정확하게 벌어진 살틈의 끝으로 꽂혔다.
시. 상. 에. 나.
이렇게 아플 수가 있단 말인가.
차라리 죽여줘!!!!! ㅜㅜㅜㅜㅜ
무려 세 바늘을 꿰맸다.
벌어진 그 깊이가 1.5cm이었다.
덜렁거리는 살점을 억지로 붙여서
의사말로는 흉이 질 수도 있고 손가락 모양은 그 전과 다를 수도 있단다.
그리고 간호사가 내게 말했다.
“다음부터는 밴드보단 거즈 같은 걸로 감고 오세요 “
사실 듀오덤 뗄 때도 아파서 난동 아닌 난동을 부렸다.
집으로 돌아와서 거즈 한 박스와 소독약 등 비상약을 잔뜩 구매했고 , 이 부상으로 인해 나는 원래 일하던 공장은 1주일이나 쉬어야 했다.
이 날의 경험은 이랬다.
다치면 눈치가 엄청 보인다. 나만 손해다.
그리고 내 손가락은
어떤 변형도 없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 후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나에겐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엔 몸 값을 올릴 수 있는 기회였다.
p.s 요즘 일이 너무 바빠서 많이는 못 올리지만 꾸준히 쓸 예정입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쓰다 보니 거친 표현이 많은데 최대한 완화해서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래도 현장감을 위해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