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과 답변의 제약

시스템의 불완전성

by 뉴욕 산재변호사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청문회에서 던진 "제가 꼭 의원님께서 질문하신 내용의 프레임에 맞춰 대답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라는 발언이 재미있다. 정치적 응변술이라고 여겨질지는 몰라도, 이는 정해진 질문의 틀에 갇히지 않고 사안의 본질을 꿰뚫는 답변을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많은 시스템, 특히 법적, 행정적 절차는 이러한 자유로운 소통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엄격한 형식과 제약된 답변을 강요하며, 이는 때로 진실의 왜곡이나 누락으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예가 워커스 컴펜세이션(Workers' Compensation) 시스템이다. 산재를 당한 청구인은 반드시 정해진 양식(form)에 맞춰 사고 경위, 상해 정도, 요구 사항 등을 기입해야 한다. 공청회(hearing)에서도 청구인은 판사나 보험사 변호사가 제시하는 질문의 틀 안에서만 답변해야 한다. 이는 효율성과 절차의 통일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복잡다단한 개인의 경험과 고통을 정형화된 틀 안에 욱여넣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고 당시의 미묘한 감정, 장기적인 고통의 양상, 일상생활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 등은 정해진 질문과 양식으로는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 결국 시스템은 청구인의 실제 경험 중 일부만을 취사선택하여 기록하며, 이는 청구인이 처한 상황을 불완전하게 재구성하는 결과를 낳는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또한 그의 저서 『넥서스(Nexus)』에서 이러한 형식(form)이 가져오는 불완전성에 대해 역설한다. 하라리는 인간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다양한 형식과 범주를 만들어냈지만, 이러한 형식은 필연적으로 현실의 풍부함과 복잡성을 단순화하고 생략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인구 조사표의 몇 가지 문항으로는 한 개인의 정체성이나 삶의 맥락을 결코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법적 절차에서 사용되는 합의서나 진술서의 정형화된 문구는 당사자 간의 복잡한 관계, 갈등의 심층적 원인, 그리고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수많은 비언어적 요소들을 배제한다. 형식은 정보를 명확하게 분류하고 처리하는 데 유용하지만, 그 과정에서 본질적인 내용이 손실되거나 왜곡될 위험을 내포한다.


결국, 정해진 틀과 형식은 사회 시스템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이는 방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예측 가능한 절차를 통해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동시에 형식은 현실의 복잡성을 단순화하고, 인간 경험의 미묘한 뉘앙스를 제거하며, 때로는 진실의 일부를 은폐하는 도구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동훈 전 장관의 발언이 시사하듯, 질문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본질을 추구하려는 시도는 중요하지만, 워커스 컴펜세이션과 같은 현실 시스템은 여전히 엄격한 형식적 제약을 강요한다. 우리는 이러한 형식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가져오는 불완전성과 한계를 끊임없이 자각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형식은 도구일 뿐, 그 자체가 진실의 전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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