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아집의 경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남긴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은 재임 기간 내내, 그리고 퇴임 후에도 끊임없이 회자되며 조롱의 대상이 됐다. 자신의 제한된 경험을 맹신하여 타인의 상황과 복잡한 맥락을 무시한 채 독단적인 판단을 내렸던 그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말은, 우리 사회에 경험이라는 것이 지닌 양면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경험은 분명 소중한 자산이지만, 때로는 아집과 독선의 굴레가 되어 더 넓은 시야를 가로막기도 한다.
변호사로서 의뢰인에게 조언을 건넬 때 나 역시 이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수많은 케이스를 처리하며 쌓아온 경험은 분명 의뢰인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제가 해봐서 아는데요"라며 과거의 성공 사례나 실패 사례를 들어 설명할 때, 의뢰인의 불안감을 덜어주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법률 지식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될지, 어떤 변수가 있을지 예측하며 의뢰인의 입장에서 가장 유리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청구인의 입장을 헤아리고' 라는 전제다. 나의 경험이 아무리 풍부하다 할지라도, 모든 의뢰인의 상황은 개별적이고 독특하다. 비슷한 사건이라 할지라도 미묘한 디테일의 차이가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지금의 의뢰인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음을 늘 경계해야 한다. 즉, 나의 경험이 의뢰인의 상황을 재단하는 도구가 아니라, 의뢰인의 상황에 최적화된 해결책을 찾아가는 데 필요한 '참고 자료' 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나는 조언을 건넬 때마다 나 자신의 아집과 독선에 빠지지 않을까 늘 마음을 다스린다. 청구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이 처한 특수한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내가 가진 경험이 혹여나 청구인의 목소리를 덮어버리거나, 그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본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조롱거리일지라도, 전문가의 입장에서는 겸손함과 열린 마음으로 끊임없이 배우고 발전해야 함을 상기시키는 중요한 경고음이기도 하다.
결국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은 경험의 가치와 위험성을 동시에 내포한다. 경험은 분명 도움을 주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라는 착각에 빠지는 순간 독선이 된다. 진정한 전문가는 자신의 경험을 맹신하는 대신, 끊임없이 새로운 시각을 수용하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나가는 사람일 것이다.
**채근담(菜根譚)**에는 아래와 같은 말이 나온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지 않으며,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생각만 옳다고 고집한다. 군자는 만물을 포용하되 사사로운 마음이 없고, 소인은 자기만 옳다 하여 만물을 배척한다."
"智者不獨信其是 而亦慮其非 愚者不獨信其是 而反斥人之非 君子萬物之包容 無偏無黨 小人自是而排萬物."
이 구절은 나의 고민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생각뿐 아니라 타인의 생각도 헤아려 그 안에 담긴 가능성이나 오류를 함께 고려한다는 것이다. 반면 어리석은 자는 오직 자신의 옳음을 맹신하고 타인의 의견을 배척하기 일쑤다. 이는 곧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이 독선으로 변질되는 순간을 정확히 짚어낸다. 나의 경험이 아무리 풍부하고 옳다 해도, 그것이 유일한 정답이라고 맹신하는 순간, 나는 만물을 배척하는 소인이 될 수 있음을 채근담은 경고한다.
결국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은 경험의 가치와 위험성을 동시에 내포한다. 경험은 분명 통찰력을 주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라는 착각에 빠지는 순간 독선이 된다. 진정한 전문가는 자신의 경험을 맹신하는 대신, 끊임없이 새로운 시각을 수용하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나가는 사람이다. 채근담의 가르침처럼, 만물을 포용하는 군자의 자세로 임할 때 비로소 나의 경험은 아집이 아닌 진정한 지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