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나의 아내는 모태신앙이지만 대표기도를 그렇게 싫어한다. 앉아서 조용히 하는 기도는 잘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대표하여 기도해야 하는 자리는 어색하다 못해 기겁하기까지 한다. 사실 기도의 방식에는 여러 형태가 있으며, 기도의 본질에 대한 각자의 관점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기도를 '하나님께 나의 소리를 전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 교회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통성기도(通聲祈禱)는 이러한 기도의 본질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형식 중 하나이다. 많은 사람이 한목소리로, 때로는 울부짖듯이 큰 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강력한 믿음과 간절함을 드러낸다. 이는 '내 목소리를 크게 내어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되게 하리라'는 신앙적 열망의 표현일 것이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주님을 향해 외치는 간구는 성도의 진실된 마음을 담고 있으며, 공동체의 기도를 하나로 모으는 힘을 가진다.
하지만 기도의 본질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일방적인 소리의 전달이 아닌 쌍방향 소통, 즉 대화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통성기도가 나의 목소리를 하나님께 올리는 데 주안점을 둔다면, 진정한 대화는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기도의 순간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귀 기울여야 할 때이다. 간절히 외치는 기도가 때로는 우리의 욕망과 뜻을 앞세우는 통로가 되기 쉽다면, 침묵과 기다림 속에서 드리는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뜻으로 이끌어 간다.
노자는 "도를 도라 말하면 이미 도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 말처럼, 기도는 말로 표현하는 순간 이미 그 본질에서 멀어질 위험을 품고 있다. 말로 모든 것을 다 담아낼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말 너머의 거대한 진리와 깊은 영적 교감을 놓치게 된다.
성경 속 엘리야 선지자는 큰 바람이나 지진, 불 속에서가 아니라 고요하고 세미한 소리(a gentle whisper)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예수님 또한 그러했다. 예수님은 종종 군중과 제자들을 떠나 홀로 한적한 곳에서 기도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가 대표적이다. 그는 자신의 고통과 두려움을 솔직히 아뢰었지만, 결국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뜻을 듣고 순종하는 기도의 본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기도의 태도가 아닐까 한다. 나의 목소리가 작아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우리의 마음이 세상의 소음과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설 틈이 없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을 향해 마음을 비울 때, 우리는 비로소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식별할 수 있는 영적인 귀를 갖게 된다.
물론, 통성기도가 그 효용성을 잃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간절함이 넘쳐 외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우리 삶에 찾아온다. 중요한 것은 기도의 다양한 형태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성찰하는 것이다. 기도 생활의 성숙함은 단순히 더 큰 소리로, 더 오래 기도하는 것에 있지 않는다. 그것은 소리 내어 말하는 시간과 함께 침묵 속에서 듣는 시간을 균형 있게 배치하고,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는 겸손한 노력에 있다.
기도는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 하나님께 전달하는 행위를 넘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여는 영적 훈련이다. 우리의 목소리가 작아질 때, 그 침묵의 공간을 채우는 하나님의 목소리는 우리 삶에 더 크고 깊은 울림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리고 그 울림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더 깊은 관계 속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