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히어링 시대의 변호사 심리
18년 전 일이다. 대학을 막 졸업할 무렵, 한 취업 행사에 참석했다. 이력서 쓰는 법에 대한 강의가 있었는데, 강사는 불쑥 이렇게 말했다. "이력서는 얇은 A4 용지에 쓰지 말고, 좀 두꺼운 종이에 쓰세요."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같은 내용이라도 무거운 종이에 썼을 때 면접관이 더 무게감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당시 나는 웹사이트를 통해 이력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이 조언을 직접 활용할 기회는 없었다.
"무거운 종이에 써야 제맛"이라는 이력서 이야기는 그 후로도 머릿속에 남아 하나의 숙제가 되었다. 18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는 개념으로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체화된 인지란 몸으로 느끼고 경험한 감각이 인지(관념)의 일부가 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감정이 메마른 사람을 '냉혈한'이라고 부른다. 냉혈한은 피가 차갑다는 뜻인데, 사실 피가 차가우면 죽는다. 그러나 차가운 피라는 감각을 통해 감정 없는 사람이라는 관념을 전달할 수 있다. '냉혈한'의 영어 표현인 'cold blooded'도 같은 의미다. 또 다른 예로, '가슴이 따뜻한 사람'은 심장에 열이 난다는 뜻이 아니라, 정이 많은 사람을 의미한다. 이 역시 감각적 경험을 관념으로 체화한 말이다. 이 밖에도 '가까운 사이(close)'나 '멀어진 사이(drift apart)' 역시 감각적 경험이 관념으로 이어진 예다.
감각 경험이 인지에 영향을 주는 재미있는 실험도 있다. 면접 위원에게 따뜻한 차를 쥐여주고 지원자를 면접하게 한 경우, 그들은 더 다정한 태도를 보였다. 온도가 내려가면 로맨틱 영화의 시청률은 증가한다. 어떤 수입차 딜러는 손님이 차를 시승하기 전, 겨울에도 핸들을 따뜻하게 데워 놓아 마치 사람의 손을 만지는 듯한 느낌을 주어 판매량을 늘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이력서를 무거운 종이에 쓰라는 조언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무거운 종이를 받아든 면접관은 지원자를 더 신중한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뉴욕의 산재 보험 클레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온라인 청문회다. 팬데믹 전에는 판사 앞에서 대면 출석을 원칙으로 했지만, 온라인 청문회로 바뀌면서 절차가 간편해졌다. 법원을 오가는 시간이 줄어 업무 능률이 오히려 높아졌다. 한 가지 더 큰 이점은 판사나 상대 변호사에게 심리적으로 밀리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판사가 변호사들보다 높은 곳에 앉아 있어 그를 올려다봐야만 했다. 그 자세 자체가 판사의 위압감을 더 느끼게 만들었다. 까칠한 상대 변사와 마주 보고 앉아 하고 싶은 말을 다 못 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온라인 청문회 시대가 열리면서 나는 이제 책상에 앉아 핸드폰 화면으로 그 판사들과 상대 변사들을 마주 본다. 판사를 올려다볼 필요도 없고, 보기 싫은 상대 변호사는 손톱만 한 화면으로 처리되어 훨씬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상대방이 아무리 강해도 그들이 조그맣게 보인다면 두려움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티라노사우루스라도 손톱만 한 크기에 불과하다면 밟아버리면 그만이다. 판사와 상대 변호사를 미니어처로 만들어버리는 온라인 청문회 덕분에 나는 그들에게 심리적으로 밀리지 않고 오가는 대화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비록 직접적인 접촉이 없어 인간미는 줄었지만, 나는 온라인 청문회가 가져온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