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교회에서 아내가 겪은 작은 해프닝이 있다. 통통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고 아내가 무심코 "어머, 젖살 좀 봐"라고 말했다. 애정 어린 칭찬이었지만, 아이는 그것을 "저 살 좀 봐"라고 오해하고 버럭 화를 냈다. 사실 그 아이는 평소 자신이 살쪘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에 깊은 상처와 스트레스를 안고 있었다고 한다. 이민자들이 모인 교회에서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아이가 단어를 잘못 받아들인, 흔히 있을 수 있는 소소한 오해였지만, 이 사건은 우리에게 의외로 깊은 통찰을 전해준다.
우리가 누군가의 말에 화를 내는 이유는, 그 말이 내 약점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평소 몸무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아이에게 "살"이라는 단어는 화살이 되어 박혔던 것이다. 만약 그 아이가 자신의 통통한 볼살을 귀엽다고 생각했다면, 아내의 말은 칭찬으로 들렸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내면에 없는 것을 지적받았을 때 굳이 화낼 필요가 없다. 내면소통 전문가인 연세대 김주환 교수는 이를 설명할 때 종종 '오렌지 나무가지'를 예로 든다. 만약 누군가 너에게 "이런 오렌지 나무가지 같으니라구!"라고 말했다고 상상해보라. 아마 아무도 화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자신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 말은 그저 흘려보내면 되는 것이다.
"인간을 괴롭히는 것은 일어난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인간의 견해다."
스토아학파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남긴 이 말은 2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은 상대방의 말이 아니라, 그 말을 우리가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 고대 철학의 통찰은 단순히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대 심리학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겪는 감정적 고통의 원인이 외부 사건이 아닌, 그 사건을 해석하는 우리의 '견해'에 있다는 것은 인지치료의 핵심 원리이기도 하다. 인지치료는 이처럼 생각의 틀을 바꾸어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어느 날 두 명의 스님이 강가를 걷고 있었는데,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한 여인을 발견했다. 나이 많은 주지 스님은 망설이지 않고 물에 뛰어들어 여인을 구해냈다. 그리고 두 스님은 다시 길을 떠났다. 한참 후 젊은 스님이 불만을 터뜨렸다. "스님, 어찌하여 중의 신분으로 여인의 몸을 함부로 만지셨습니까?"
주지 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이미 강물에 버리고 온 여인을, 자네는 아직도 마음속에 품고 있구려."
주지 스님의 마음속에는 이미 여인이 사라지고 없었기에 젊은 스님의 말에 화낼 이유가 없었다. 상대방의 말이 오렌지 나무가지처럼 느껴지면, 그리고 강물에 뜬 여인처럼 이미 흘려보낸 일이라면, 우리는 더 이상 그 말에 휘둘리지 않는다. 내가 가진 약점이나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면, 그 취약성을 드러내는 말에 더욱 상처받기 쉽다. 하지만 내가 나의 약점을 인정하고 극복해 나가고 있다면, 타인의 말은 더 이상 화살이 되지 못한다.
우리가 타인의 말에 크게 흔들리는 이유는 대개 그 말이 내 약점을 비추는 거울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결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노력을 한다면, 그 어떤 말도 더 이상 화살이 되지 못한다.
결국 본질은 나 자신과의 대화에 있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가 아니라, 내 마음이 나에게 건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평온에 다가간다. 평온은 세상이 나를 어떻게 부르는가에 달려 있지 않고,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부르는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