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해 변호사로 8년째 근무하며, 제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시간관리입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하루에 통상 100개의 케이스는 들여야 봐야 하기 때문인데요. 진료/치료기록 요청 및 분석, 통증병원과의 커뮤니케이션, 히어링 준비, 히어링에서 청구인 대변, 온라인 및 오프라인 의뢰인 상담, 항소문 및 반박문 준비 등을 모두 포함해서 하루에 100개의 케이스는 접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루에 적어도 제가 10시간을 근무하니, 평균 6분 당 1개의 케이스를 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네요. 숨 돌릴 틈도 없이 케이스를 처리한다고 생각하는데, 시간관리는 여전히 제가 해결해야 할 숙제입니다. 모든 케이스가 중요하나, 긴급한 것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 업무 기준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마감일이 다가오는 사건을 먼저 해결하기입니다. 그런데, 마감일이 한참 뒤인 사건들의 경우에는 선택적으로 사건을 우선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 행동을 분석해 본 결과, 저는 그 일을 했을 때 확실한 피드백이 나올법한 사건을 먼저 처리하고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확실성을 싫어하고, 대신 확실한 것을 좋아합니다. 불확실한 것은 아무래도 위험해 보이거든요. 이런 불확실성에 대한 연구 결과로 ‘엘스버그의 역설(Ellsberg Paradox)’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엘스버그의 역설을 통해 제 시간관리 성향을 평가해 보았습니다. 군사정보 학자인 대니얼 엘스버그는 그의 실험 결과를 통해 “사람들이 항상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이 엘스버그의 역설을 보여주는 간단한 실험을 같이 해보시겠습니다.
여러분 앞에 A와 B라는 두 개의 상자가 놓여 있습니다. 각 상자는 윗부분이 열려 있어서 손을 집어넣을 수는 있지만, 그 안은 들여다볼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A 상자에는 정확하게 빨간 공 50개와 까만 공 50개, 총 100개의 공이 들어 있습니다. B 상자에도 빨간 공, 까만 공 합쳐서 100개가 들어있지만 각각의 개수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한 상자를 선택하여 공을 꺼내시게 되는데, 빨간 공을 꺼내실 경우 100불의 상금을 받으십니다. 여러분은 A와 B, 어느 상자에서 공을 꺼내시겠습니까? 엘스버그의 실험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A 상자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A 상자에는 빨간 공이 50개가 있다는 확실함이 있기 때문이었는데요.
이제 규칙을 바꿔서, 여러분은 어느 한 상자에서 까만 공을 꺼내실 경우 100불의 상금을 받으십니다. 자, 이제는 A와 B, 어느 상자에서 공을 꺼내시겠습니까? 이때도 대다수의 실험 참가자들은 여전히 A 상자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처음 실험에서 A 상자를 선택하신 것은 빨간 공이 B 상자보다 A 상자에 더 많을 것이라고 가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A 상자에 빨간 공이 50개라는 것을 알고 계셨으므로, B 상자에는 빨간 공이 50개 미만이라고 가정하신 것이고요. 달리 말해, B 상자에 까만 공이 50개 이상이라고 가정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까만 공을 꺼낼 경우 상금을 받는 두 번째 실험에서는 B 상자를 선택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일관적인 행동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여전히 A 상자를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엘스버그의 역설’입니다. 엘스버그에 의하면 일반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에도 A 상자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하네요. 엘스버그는 이 실험 결과를 불확실성이란 말로 설명했습니다. 빨간 공과 검은 공이 모두 있지만 각각 몇 개인지는 알려진 바 없는 B 상자는 사람들에게 불확실한 것으로 다가옴에 따라 사람들은 불안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조건이 다른 첫 번째, 두 번째 게임에서 모두 A 상자를 선택한 사람들의 심리는 A 상자에는 빨간 공 50개, 까만 공 50개라는 확실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 사건이 있는 가운데 선택적으로 우선을 두어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저의 시간관리에도 이런 엘스버그의 역설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이왕 하는 일, 확실한 피드백이 주어질 사건을 그렇지 않을 사건보다 먼저 처리하는 것이지요. 여러분의 시간관리는 어떠신가요? 엘스버그의 역설은 비단 시간관리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우리의 선택 행위, 투자 행위 등에도 적용될 수 있는 재미있는 실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