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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 산재변호사 Oct 01. 2022

최적 보상의 개념

뉴욕 산재보험법

뉴욕에서 산재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업무 중 다친 근로자의 편에서 보험사와 상대하며, 최대의 치료와 최적의 보상을 위해 일하는 변호사입니다. 


뉴욕에서 많은 사고상해 변호사님들이 광고를 하실 때 “최대 보상 해결사”란 말을 많이들 사용하십니다. 반면에 전 최적 보상이란 말을 사용하구요. 


뉴욕 산재보험법에서는 보상의 기준이 “치료와 수술을 받을만큼 다 받아 보았는데 안낫는 정도”입니다. 영어로는 permanency라고 하는데, 우리 말로는 “영구적 부상” 정도가 될 것입니다. 치료와 수술 후 안낫는 정도는 사람들마다 달라서, 어떤 분들은 일정 치료 후 말끔히 낫기도 하지만, 어떤 분들은 같은 치료를 받아도 한참을 고생하시고 많은 후유증을 나타내십니다. 


이렇듯, 치료와 수술 후 안낫는 정도에 있어 사람들마다 차이가 나기 때문에, 변호사인 저로서는 최대 보상이란 말을 함부로 쓸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낸 개념이 “최적 보상”입니다. 사람마다 체구가 달라 맞는 옷이 다르듯이, 의뢰인마다 영구적 부상의 정도가 다른 까닭에 보상도 달라질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최적 보상의 개념을 갖고 의뢰인들을 설득한다 하지만, 그분들이 모두 제 판단에 동의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에 보험사와 몇 일의 협상 끝에 1만불을 보상으로 제시받은 케이스가 있었는데, 그 의뢰인은 적어도 3만불은 받아야 한다면서 1만불 보상 제안을 거절하였습니다. 


자신이 겪고 있는 무릎 통증이 이토록 큰데, 1만불은 그 통증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제가 1만불 보상이 최적이라고 생각한데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의뢰인의 주관적인 통증을 제가 다 이해하기는 어려운 까닭에 합의를 억지로 권유할 수는 없었습니다. 


똑같은 케이스란 있을 수가 없고, 케이스가 다른만큼 보상의 액수도 달라질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제가 아무리 최적 보상의 개념을 제 의뢰인에게 열심히 설명해 드린다 해도 늘 부딪히는 것은 이러한 의사 소통의 문제입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우리 언어 해상도의 한계가 변호사-의뢰인 사이의 보상 문제에 대한 이견을 갖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조금씩 다른 뇌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지 작용은 결국 외부자극에 대한 뇌의 해석에 의한 것인데, 조금씩 다른 뇌를 갖고 있는만큼 조금씩 다른 계산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해석이 조금씩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우리가 희다고 믿고 있는 ‘흰색’조차도 사실 한가지 색깔이 아니라 여러가지 흰색이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백조의 깃털 색깔도 흰색이라고 말하고, 구름 색깔도 흰색이라고 말하며, 겨울철 내리는 눈도 흰색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고 보면 ‘흰색’으로 통칭하는 이들 흰색이 사실 다같은 흰색은 아닙니다. 백조의 깃털을 가만 보면 사실 노란색 비슷한 것도 보이고, 회색 비슷한 것도 보이고, 약간 얼룩덜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의 구름도 완전한 흰색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회색빛이 감도는 경우가 많지요. 하늘에서 내리는 눈도 기상상태에 따라 오염물질이 섞일 경우 얼마든지 다른 종류의 흰색 눈이 내리고는 합니다. 최근 소위 “세상에서 가장 하얀색”이 탄생하여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퍼듀 대학 연구팀이 만든 이 흰색으로 만든 “울트라 화이트 페인트”는 태양광의 98.1%를 반사하며 동시에 적외선 열을 반사시킨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른 백조의 깃털, 구름, 눈, 페인트색을 모두 흰색이라고 우리는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여러가지 종류의 흰색을 우리가 흰색이라고 통칭하여 이름붙이고 아무런 문제없이 의사소통하며 살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문제는 제 눈에 보이고, 제가 기억할 수 있고, 구별할 수 있는 이 흰색을 완벽하게 구별하여 표현할 만한 단어가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백조의 깃털, 구름, 눈, 페인트색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비슷한 단어로서 흰색을 사용했습니다. 


제가 비록 흰색이란 단어를 사용했지만, 사람마다 뇌가 다르기 때문에 구독자 여러분들도 각각의 흰색이 분명히 저하고 다르게 보이실텐데요. 그런데 그 색깔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말이 없으니까, 여러분 역시 흰색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백조의 하얀 깃털, 흰 구름, 흰 눈, 흰색 페인트라고 하면 여러분도 아, 그렇게 공감하는 것입니다. 


현대 뇌과학이 규명한 것 중 하나가 “언어의 해상도가 인식의 해상도보다 훨씬 낮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폭넓게 인식하고, 높은 해상도로 구별할 수 있는데ㅡ 예를 들어, 백조의 깃털, 구름, 눈, 페인트의 색깔을 모두 구별할 수 있는 것처럼요. 그러나, 일대일로 대응하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뭉뚱그린 하나의 단어로 (예를 들어, 흰색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과 대화하다 보면 같은 말, 동일한 단어가 오간다 해도 각자 생각하는 그 말의 의미가 다른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것은 언어 자체의 속성에서 비롯되는 한계 때문입니다. 


이솝우화에도 언어의 한계와 연관된 재미난 얘기가 있습니다. 늑대가 어느날 고기를 맛있게 먹다가 가시가 목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 고통 때문에 아무 것도 먹을 수도, 할 수도 없었던 늑대는 꾀를 내어 두루미에게 달려 갑니다. 그리고 두루미에게 이렇게 제안합니다. 


“만약 네가 내 목에 있는 가시를 꺼내주면 큰 상을 줄게.”


두루미는 자신의 머리를 늑대의 입 속에 넣는 것이 맘에 걸렸지만, 늑대의 약속을 믿고, 자신의 목을 늑대의 입 안으로 넣어 긴 부리를 이용하여 가시를 빼내는데 성공합니다. 


가시가 빠져나간 것을 확인한 늑대는 룰루랄라 두루미 곁을 떠나려 합니다. 이때, 두루미가 말하지요. 


“늑대야, 잠깐.. 내게 상을 주기로 한 것 같은데..?”


늑대가 으르렁 거리며 이렇게 대꾸합니다. 


“상? 야, 네 머리를 내 입 속에 넣고도 살아 남았잖아? 그것보다 더 큰 상이 있냐?”


두루미와 늑대는 상의 의미를 완전히 다르게 얘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찌기 노자 도덕경에서는 이러한 언어 자체가 갖는 해상도의 한계를 “도가도, 비상도 (道可道, 非常道, 도를 도라는 언어개념 속에 집어넣어 버리면, 그 개념화된 도는 항상 그렇게 변화하고 있는 도의 실상을 나타내지 못한다.)”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보상 문제에 있서 변호사로서 생각하는 ‘최적’과 의뢰인이 생각하는 ‘최적’ 또한 이러한 언어 해상도의 한계 때문에 차이가 일어난다고 전 생각합니다. 변호사인 저는Workers’ Compensation 보험법이라는 제도권에서 말하는 최적을 말하는 반면, 의뢰인은 자신이 처한 경제적 한계상황, 부상에 대한 주관적 통증, 그리고 그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근거로 한 최적을 말씀하는 것이지요. 


‘최적’ 보상에 대한 이러한 해석 차이에도 불구, 양쪽의 ‘최적’ 개념 사이의 간극을 좁힘으로써 의뢰인을 만족시켜야 하는 것은 여전히 제 소임임은 당연합니다. 제가 좀더 반성하고, 그 의뢰인에게 다시 다가가 그분 얘기를 좀더 들어보고 1만불 보상을 받아 들이실 수 있도록 좀더 설득해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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