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 철학자이자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 제10권 30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군가를 비난하려는 순간,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라. ‘내 안에도 그와 가장 비슷한 결점은 무엇인가?’”
이 짧지만 깊은 문장은 우리에게 단지 판단을 유보하라는 것이 아니라, 비판의 시선을 먼저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라고 요청한다. 타인 안에서 나 자신을 보는 일—그것이야말로 지혜의 시작이다. 이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불완전함을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
세기를 건너, 현대 심리학자 찰스 두히그는 『슈퍼 커뮤니케이터(The Super Communicator)』에서 이와 유사한 통찰을 전한다. 진정한 대화는 공통의 경험, 상호 공유되는 가치, 인간적인 감정을 기반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오늘날처럼 적대감이 확성기처럼 퍼지는 시대에 더욱 절실하다. 우리는 매일, TV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치적 반대편을 향한 혐오와 조롱의 말들을 목격한다. 비판은 민주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조롱으로 변하고, 반대가 비인간화로 이어질 때, 우리는 논쟁 이상의 것을 잃는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인간성’이라는 본질적 끈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반대하는 이들은 괴물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원하지 않게 태어났고, 원치 않게 죽음을 맞을 것이다. 그들 역시 웃고, 아파하고, 실수하며, 사랑한다. 누군가의 부모이며, 누군가의 자녀이고, 친구이며 이웃이다. 정치인이기 이전에, 그들은 먼저 한 인간이다. 그 지점에서 우리는 공감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꼭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해는 가능하다. 잔인함 없이 비판하고, 입장 너머의 사람을 보려는 시도는 약함이 아니라 도덕적 용기다. 아우렐리우스의 말처럼, 우리가 비난하는 결점은 어쩌면 우리 안에도 있을지 모른다. 두히그의 말처럼, 대화의 시작은 논쟁이 아니라 연결이다.
그러니 우리가 반대하는 자들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건네자. 그들이 항상 옳아서가 아니라, 그들도 우리처럼 인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