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아니’로 시작하는 말에 낙담하는가

by 뉴욕 산재변호사

클라이언트와의 대화 속에서 나는 종종 “아니,”로 시작되는 문장들을 마주한다.

사실 "아니"로 시작하는 화법은 한국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 방식이며, 결코 낯설지 않다. 산울림의 노래 *‘아니 벌써’*가 발표된 것도 벌써 1977년의 일이다. "아니 벌써 밤이 이렇게 깊었나?"라는 가사는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감탄, 놀람, 아쉬움까지 담고 있다. 어떤 외국인이 한국어를 얼마나 능숙하게 구사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가 바로 이 ‘아니’의 감각적인 사용이라는 말도 있다.


‘아니’는 문법적으로는 부정어이지만, 한국어 구어체에서 이 단어는 단순한 ‘부정’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한국어에서 "아니"는 하나의 감정 장치이며, 대화의 문을 여는 열쇠다.


원래 "아니"는 어떤 사실을 부정하거나, 사실이 아님을 밝힐 때 쓰인다. 하지만 실제 대화 속에서 이 단어는 훨씬 더 다양한 감정과 뉘앙스를 담아낸다. 놀람, 당황, 짜증, 애정 어린 꾸짖음, 단순한 반응조차도 "아니"로 시작된다. 그것은 언어 이전의 감정, 마음속에서 일어난 파동이 가장 먼저 입을 통해 터져 나오는 방식이다.


이러한 언어 현상은 단순한 말버릇이 아니다. 이는 한국어가 갖는 정서 중심적 소통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어는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를 중시한다.


그래서 “아니”는 단순한 사실 부정의 도구가 아니라, 화자의 감정 상태, 거리감, 말의 흐름을 조절하는 담화표지로 진화해왔다. 영어의 "Well", "Come on", "Seriously?" 같은 표현과 유사한 기능을 하지만, 한국어의 “아니”는 그보다 더 미묘하고 복합적이다. 감정을 숨기고 돌려 말하는 한국 문화의 특성 속에서 “아니”는 때로는 말하지 못한 마음을 대신 전하는 역할을 한다. "아니"는 어쩌면 감정의 무의식이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 억울함, 당황함, 혹은 애매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음절.


“아니, 진짜 그랬단 말이야?”라는 말 속엔 한 문장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실려 있다. 그러니 "아니"는 더 이상 단순한 부정어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이 말을 시작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런 "아니" 앞에서 나는 때때로 좌절감을 느낀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 그건 좀 다르고요…”
“아니, 제가 말한 건 그게 아니에요.”


이 짧은 두 음절은 논리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낙담한다. 왜일까?


나는 소통이란 서로를 향해 다리를 놓는 행위라고 믿는다. 그런데 "아니"는 그 다리 앞에 벽을 세운다. 나는 설명하고, 안내하고, 돕기 위해 말을 건네지만, 그 앞에 "아니"가 놓이면 내 말은 닿기도 전에 튕겨나간다. 그것은 단순한 반박이 아니라, 내 역할과 의도를 부정당한 듯한 감정이다.


물론, 상대는 그저 사실을 바로잡고 싶었을 수 있다. 억울함을 표현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의 “아니”는 방어이고, 자존이고, 혹은 단순한 말버릇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낙담한다. 왜냐하면 나는 신뢰를 전제로 대화를 시작하기 때문이다.“함께 해결해보자”는 마음으로 말을 건넸는데, 그 앞에서 “아니”라는 벽을 마주하면 나는 잠시 멈칫하게 된다. 결국 내가 낙담하는 이유는 ‘아니’라는 단어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그 말 속에서 내가 느끼는 심리적 거리감, 그리고 소통이 끊기는 찰나의 정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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