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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im Apr 28. 2023

기억의 상처 1편

이번달이 엄마가 27년 전 돌아가신 달이다. 항상 엄마가 돌아가신 달이 되면 가슴에  비가 내린다

사진을 보고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래 보려 하지만 시시때때로 같이 시장에 가서

엄마와 장바구니를 밀고 호떡을 한입 베어 물으며 웃음 짓고. 고구마잎을 잔뜩 사 와 고구마줄거리 김치를  

만들 거라며 손톱 끝이 파랗게  될 때까지 고구마줄기를 다듬게 만들고 우리가 고구마줄기를 손질하는 동안

고등어를  갈아 카레를 얻어 만든 고등어부침을 만들어주었던  엄마 ,, 툴툴거리는 우리에게

미소 지으며 머리를 만져 주었던 그런 순간 들을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다시는 올 수없는 날들이기에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보고픔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마음일 것이다.


엄마는 내겐 마음의 응원자였다. 뭘 잘하든 잘못하든 엄마는 항상 나에게 질책보다는

칭찬을 보여주는 사랑을 주었기에 살아오며 큰 위안과 용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허나,아빠는  엄마와는 반대로 평생 나에게 지워지지 않는  학대라는 기억을 남긴 분이다

요사이는 아이들에게 부모 일지라도 심한 매질을 하면 보호처분이나 경고가 내려질 정도로 가정문제에

사회가 많은 부분 객관적 시선과제도가 마련되어 있으나 1970년대의 시대는 너무도 가난한 나라였는지라

한집에 tv가 동네 tv여서 무릎을 끌고 아이들이 그 집마당에 삥 둘러앉아 tv를 시청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그 정도의 가난한 나라여서 가정사를 돌아봐주는 그런 제도 자체가 없었다


우리 집도 가난 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농촌에 사는 동안은 엄마는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해주거나

아빠가 운전기사로 벌어오는 약간의 월급으로 먹고사는 가정이었었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종로 1가에서 동대문정도의 거리였고  지금은 중부 고속도로가 생긴

하남시 근처였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양쪽 길가에 아카시아길이 쭉 펼쳐져 등하굣길 군것질을 아카시아잎

를 따먹고 남의 집 과수원이서 떨어진 복숭아를 주워 먹으며 허기를 채우곤 했었다


초등학교2학년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4살짜리 막냇동생이 걱정되어 학교에서 무료로 나누어준 삼각포장의

우유를 가방에 넣고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가 동생에게 우유를 주고 나는 물로 배를 채우곤 했었다

석유곤노로 무얼 만들어 먹을 만큼 집에 있는 것도 없었고 그 정도로 허기를 달래는 건 그 시대의 아이들에게는

흔히들 있었던 일이라 동생이 우유를 먹고 행복하게 잠든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린 내 마음에 언니로서 책임을

다한 안도가 있었던 듯했다 그런 나는 아빠가 참 무서웠다 동생들에게는 과자도 가끔사다주시고

무릎이 앉혀주시기도 하고밤늦게 동생들 머리맡에 종이봉투소리가 스르륵 들릴 때면

아빠가 동생에게 무얼사오셨구나 알게 되기도 했지만

아직 9살밖에 되지 않은 나는 조금의 실수에도 싸대기가  올라왔고. 가죽혁대로 맞아 종아리가 시퍼렇게 멍이들어

학교로 등교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맞을 만큼 아이가 잘못한 건 무엇이었을까 그저 아빠는 나를 싫어했던 거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그 말은 절대 나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다

아련한 기억 속친구 중에 구멍가게를 하던 아빠를 둔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늘 가방 안에 과자를

가져와 친구들과 나눠먹기도 하고 동네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과자를 나눠먹으며 숙제를 했었던

기억이 나는데  친구의 아빠는 딸에게 너무도 온화하고  따뜻한 눈빛을 주었었다. 9살 나의 기억에

그런 친구아빠가 우리 아빠였으면 하는 부러움이 컸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어가던 어느 날 외할머니댁에 방문을 했었다. 할머니가 끌여주시던  호박죽. 고구마줄기를

넣어 끌인 갈치조림은 전라도식이면서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음식이어서 종종 버스로 몇 시간을 달려

할머니집에 머물 곤 했었다 할머니의 저녁상에서 언제인지 모르는 내 기억 조각을 끄내 여쭈어보았다

가끔 무얼 하다가도 방벽을 보면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 쿵하고 부딪혔던 기억 방바닥으로

뚝 떨어졌던 기억 할머니는 갑자기 숟가락을 떨어뜨리며 놀라셨고 그걸

“네가 기억하냐”물으시더니

불쌍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시면서 머리를 어루만지시곤

“어린것이 얼마나 아펐으면 돌 때기억을 하고 있을까. 니 아비는 미친놈이여“하시면 눈물을 연신흠치시며

돌쟁이가 뭘 안다고 아그(전라도사투리)를  벽에 던진다냐. 어린것이 을매나 아펐으면 그 기억을 한당가

넌 살아있는게 기적이여 “할머니는 기억이 나시는지 코를 훌쩍거리시며 치마로 눈물을 닦으셨다

아!!! 아빠가 나를 벽에 던진 기억이었구나 돌 때!!!!!! 라니

돌쟁이 아이를 벽에 던질 만큼의 나쁜 짓은 무엇이 있을까.

돌쟁이가 무얼 얼마나 잘못을 하면 벽에 던져지는 건가

이 만큼(이십 때초반) 나이를 먹을 때까지 궁금해하던 언제인지 모르는 떠오르는 그 기억

머리가 찡해지는 기억이 돌 때였음을 알았었다



~~2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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