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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희 Aug 05. 2021

나는 우산이 있어요

우산 정리

  나이가 들고 보니 버려야 할 것이 많다. 옷가지도 그렇고 신발과 내가 지닌 물건들이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럽게 다가올 때가 많았다.

  한꺼번에 다 할 수는 없고 날짜를 나누어서 정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며칠 전 무심코 신발장에서 신발 정리를 하고 있는데.

옆 칸에는 우산이 겨울철 땔감처럼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동안 한 번도 정리를 하지 않았으니 나의 게으른 민낯을 보는 것 같았다. 식구들이 쓸 우산을 남겨 놓고도 남는 우산은 13개나 되었다.

  그동안 식구 넷이서 일기예보를 무시한 채 나갔다가 사 가지고 온 우산들이었다.

  한 번씩 펼쳐서 쓸 수 있는가 확인한 다음, 헌 옷 정리함 옆에 놓아두면 가져가겠지 생각하며 노끈으로 묶어 놓았다.

  신발장과 우산을 정리하고 나니 끈적함과 습한 기운이 나의 빈 몸에 달라붙어 옷을 적시고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아이스커피로 갈증을 식히고 있는데, 갑자기   창가에 부딪히는 빗줄기. 소나기였다. 금방 그칠 것처럼 보였는데, 비는 소나기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변하더니

그칠 줄을 몰랐다.

  그때서야 아이들이 우산을 챙겨갔나 생각의 들고 안 들고 갔으면 또 우산을 사겠지, 한심한 생각에 잠겼는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나는 우산이 없어요.'

  내 귓전을 때리더니 사정없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어떻게 하지, 생각할 겨늘도 없이 캐리어에 우산을 싣고 교차로로 나갔다.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세요.'

  쓴 글귀를 캐리어에 붙여 놓고 교차로에 있는 큰 파라솔에 밑에 놓아두었다. 나는 그 자리에 있기가 좀 쑥스러워 약국에 들러서 마스크와 반창고를 사서 10분 후에 와보니 우산은  하나도 없었다.  

아마 우산을 가져 간 사람들도 집에 우산이 많을 건데 출근할 때 가져오지 못했으리라 생각되었다.

  아스팔트의 표면 위에 뜨거운 먼지는 사라지고 털털대는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오면서 나는 콧노래를 불렀다.

  '나는 우산이 있어요.'

  가사를 바꾸니 노래가 맹물 같았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한쪽으로는 무언가 채워지는 느낌도 들었다.

  수없이 뒤척이는 물방울의 흐름 속에서 허공을 뚫고 내리는 빗방울이 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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