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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희 Aug 12. 2021

체코 프라하의 밤

집시가 되어

  부부 동반 모임에서 2년에 한 번씩 외국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는데 이번 유럽은 동유럽이었다. 가고 싶었던 체코를 간다는 생각에 마음은 들떠 있었다.

  설렘을 가슴에 안고 동유럽에 도착한 지 사흘 째 되넌 날 어둠의 프라하 성을 보기 위해 카를교 쪽으로 향했다. 예술의 거리 위에 놓인 다리는 그림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중세도시의 동화 같은 모습과 노을이 지는 프라하의 저녁에 나는 주저앉았다.

  수천 개의 노을은 도시를 그림으로 물들였고 나는 그 그림 속의 주인공이 되어 다리 위를 걸었다. 그림을 잘 그린다면 이 모든 것을 화폭에 담고 싶었다.

  걷다 보니 소원을 비는 동상도 있었다. 나도 소원을 빌었다.

또 다리 곳곳에는 음악을 들려주는 악사들도 있었다. 다리 중간쯤 걸었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베사메 무쵸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수많은 관광객이 있었으나 나는 내 마음을 숨기기 싫었다.  지켜보던 관광객 중 한 명이 나를 따라 춤을 추자 나의 일행과 많은 사람들이 박수로 화답했다. 그렇게 5분 정도의 춤이 끝나자 마치 내가 악사와 같이 춤추러 온 사람인 줄 알고 여기저기서 돈을 바이올린 케이스에 넣는다. 돈은 순식간에 수북이 쌓였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집시가 기분도 싫지는 않았다. 나가 자리를 뜨려 하지 악사는 나에게 돈을 한 움큼 쥐여 주며 뭐라고 말을 했고, 나는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계속 춤을 추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다리 끝으로 가서 좀 더 자세히 프라하 성을 보려고 돈을 주고 그 자리를 떴다.

  남편은 창피했는지 멀리서 보고 있다가 내가 곁으로 가자

  ''악사랑 같이 살지 그랬어.''

  그러거나 말거나 다리 끝으로 갔다. 카를교에는 어느새 어둠이 내렸다. 어둠 속에 멀리서 프라하의 성벽이 보였다.

크고 작은 건물들이 불빛과 성곽 속에 어우러져 그 은은함이 어둠 속에서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멍하니 얼마나 바라보았을까! 밤하늘에 흩어진 불빛과 어우러진 성곽들의 모습이 지상의 낙원 같았다.

  조금 전 소원을 빌 때 다시 태어나면 이곳에서 태어나게 해달라고 말했는데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소원을 빌어서인지 마음의 허기는 채워진 것 같았다.

  일행과 내려오면서 먼발치로 카를교를 다시 보았다. 다리 위에서는 보이지 않던 다리가 내 눈앞에 머물더니 내  눈을 가지고 가 버렸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는 이 손색이 없었다. 다리 밑으로 볼타 강이 유유히 흐르고. 음악이 흐르고, 어둠도 흐르고, 불빛도 흐르고 있다. 어느새 내 마음도

볼타 강을 따라 흐르고 있다,

  이곳을 떠나더라도 프라하의 밤은 영원히 내 마음속에 흐를 것이다.

  먼 훗날 누군가가 문득 나를 부르면 프라하 다리에서 춤을 추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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