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영희 Jan 30. 2022

프로젝트

늦둥이 아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아이들이 어려서 돌아가면서 학부모들이 교실 청소를 했다. 4명이 한 조가 되어 청소를 하는데 학교 복도에 가보니 벌써 3명의 엄마가 와서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 문이 열리자 나이 많은 엄마가 황급히 들어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자 아이들 입에서 이구동성으로

그 아이를 향해 너희 할머니 오셨다고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보았다. 아이는 뛰쳐나오면서 소리쳤다.

  " 내가 오지 말라고 했지. 쪽팔려 학교 안 다닐 거야."

  그러면서 잽싸게 뛰쳐나간다. 1학년 아이 치고는  하는 말과 행동이 너무 매몰찼다. 그 뒤를 이어 할머닌지 어머닌지 황급히 뒤따라가는 모습이 비를 피하는 장닭 같았다.

  청소를 하면서도 조금 전의 잔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에서 나의 궁금증도 덧칠되었다.

  청소를 마치고 학교 문을 막 나서려는데 아까 그 여자가 서 있었다. 눈가에는 촉촉한 물기가 서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 저도 오늘 청소 당번인데요. 아들 때문에 청소하지 못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 시원한 음료수라도 사드리고 싶어 기다렸어요."

  어디서 농사일하다가 온 것 같은 순수한 얼굴빛으로 힘겹게 말하는 모습은 애처롭게 보여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먹어야만 그녀가 편할 것 같았다.

  학교 앞 빵집에서 음료수를 마시면서 그녀는 마치 내가 성당 신부라도 되는 양 고해성사를 했다. 자기가 첫 아이를

잃고 나서 아이가  들어서지 않았는데 40이 넘어서 얻은 게 지금의 아들이란다. 자기가 살아가는 이유는 오직 아들인데. 나를 너무 싫어하는 게 슬프다고 했다. 그리고는 저기 큰 도로에서 방앗간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일하다 아이 끝나는 시간이 되어 정신없이 왔다는 그녀를 천천히 훑어보니 왜 그녀를 아들이 싫어하는 줄 알 수 있었다. 엄마가 아닌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둘만의 이야기는 저녁 어스름이 될 무렵에야 끝이 났다.

  며칠을 생각 끝에 나는 그녀를 젊게 만드는 프로젝트를 가지고 방앗간을 찾았다. 내 생각을 그녀에게 말하자 흔쾌히 승낙했다. 머리는 뽀글뽀글 할머니 파마에서 짧은 카트로, 옷은 낡은 티셔츠와 헐렁한 바지에서 청바지와 골프복으로,

신은 슬리퍼에서 구두로 바꿨다. 바꾸고 나니 12살 아래인 나와 비슷해 보였다. 아니 몸매는 나보다 예뻤다. 가 봐도 언니에서 친구로 둔갑해 있었다. 그녀도 몹시 흡족해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나는 그녀를 향해 늦게 아이를 낳았으면, 그 또한 엄마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윽박지르듯이

  " 학교에 올 때는 방앗간이 아무리 바빠도 일하다 오지 말고 미장원에 들러 머리하고 화장하고 올 것. 티셔츠 세울 것,

귀걸이 꼭 할 것."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천 원짜리 귀걸이였다.

그러면서 마치 큰 거라도 해준 양 나는 의기양양하게 그녀를 향해 다짐을 받았다. 아니 어쩜 그녀의 외모에 내가 더 자신이 있어서 인지도 몰랐다.

  며칠 후 아이들의 발표회가 있어 학교에 오던 날, 내가 사준 귀걸이를 하고 내가 시킨 모습대로 나타났다.

  여기저기서 꾸미니 예쁘다는 말과 선생님까지도 아름답다는 말에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목련꽃처럼 환한 엄마의 모습에 아들의 얼굴은 밝아지고 입가에 웃음이 고였다. 수업이 끝나고 둘이서 손잡고 가는 모습을 보며 프로젝트 완성 나의 입가에도 웃음이 고였다.

  그 뒤 그녀는 나에게 줄게 떡 밖에 없다면서 떡을 할 때마다 나를 불러 떡을 주었고 떡 좋아하는 나는 복사꽃 웃음을 지으며 그곳에서 이사 가는 날까지 야금야금 받아먹었다.

  7년 동안 받아먹은 떡은 눈이 쌓이듯 살이 되었고 내 몸은 다이어트 20년을 넘게 하고 있다. 성공률은 0 프로 아마도 그녀의 사랑이 차곡차곡 내 몸에 쌓여 배출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작가의 이전글 이제 분리수거할 때가 되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