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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희 May 04. 2023

부안 격포에서 있었던 일

청양고추

  5월의 중턱에 살이 올라 나무들은 싱그럽게 그지없었다.

차 창가로 아카시아 향내가 바람을 타고 들어와 콧등을 스치면 날아오를 것만 같은 마음은 그와의 데이트였을 것이다.

  덜컹 대는 차를 1시간 이상 타서인지 차에서 내리자 속이 스멀스멀 메스꺼웠다. 그늘에 가서 몸을 누이고 싶었다. 작은 소나무에 등을 기대고 울렁거리는 속을 잠재우고 있는데, 어디를 갔는가 보이지 않던 그가  내 손에 쥐여준 콜라 한 컵을 마시고 나서야 속이 좀 가라앉았다.

  여기까지 와서 나 때문에 지워지는 시간이 되기 싫어  파도소리가 들리는  바다 쪽으로 향했다.

  바다를 보자  멀미도 잠시, 모래바람에 묻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비릿한 해초 내음이 바다의 향기 되어 나의 몸을 휘감았다.

  오랜만에 백사장도 걸어보고. 바위 사이에 고둥도 잡아보고, 바다에 발도 담가보고. 둘의 이야기는 파도의 물결이 되어가는 동안에 바다를 끼고 켜켜이 쌓아 올린 절벽들이 물 비린 사랑을 키우듯 우리의 사랑도 조금씩  익어가고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파도의 거품이 되어 돌아오면서 어느덧 2시가 훌쩍 넘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서야 배가 고프다는 것을 알고 음식점을 찾았다.

  작고 아담한 음식점으로 들어서자 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우리 밖에 없었다.

  김찌찌개 2인분을 시켰는데 인심 좋은 식당 아줌마 덤이라고 계란찜을 해줬다. 그리곤 조금 후에 자기 밭에서 땄다고 작은 고추를 내어 놓았다.

  " 좀 맵지만 맛있어."

  아줌마의 살뜰한 정성에 그가 고개 숙여 인사를 하더니 성큼 청양고추를 베어 먹는다. 그리고는 이내 눈물을 흘린다. 나는 재빨리 손수건을 주었다. 그가 눈물을 닦자 지켜보던 식당 아줌마

  "왜 아가씨가 헤어지자고 해."

  남자 인물 좋고 착해 보이는데 왜 헤어지려고 하냐면서 나를 다그친다.

  " 6개월 만났으면 이제 헤어질 때도 되었어요."

  나의 말에 식당 아줌마는 잘 생각하란다.

  여러 사람 만나봐야 좋을 것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는 사이에 그는 딸꾹질까지 한다.

  " 밥 한 공기 더 주세요."

  식당 아줌마가 밥을 가져간 사이에 나는 그에게

  " 맨밥을 씹지 말고 삼켜봐요."

  어쩌면 딸꾹질이 멈출 수 있어요. 식당 아줌마가 밥을 가져오자마자 맨밥을 씹지도 않고 삼키자, 식당 아줌마 어깨를 치며

  " 총각. 속상하다고 그리 먹으면 체해."

  딱한지 동치미 국물을 퍼다 주면서 국물을 들이켜라고 한다. 그러면서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았다.

  나는 시선을 어디에 둘 지를 모르고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실실 웃었다.

  "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

  아! 더는 순진한 식당 아줌마에게 장난치면 안 될 것 같았다.

  " 이 모든 것이 아줌마 때문이에요."

  매운 것을 전혀 먹지 못하는데, 별로 맵지 않다고 해서 먹었는데, 이제껏 먹어 본 고추 중에 가장 매워서 눈물 흘리고 딸꾹질까지 했다고 하니

  " 그럼 그렇지."

  미안해하면서 밥 한 공기 값은 받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남자가 그 정도의 고추를 먹고 울면 쓰냐고 고추 먹을 때는 매운지 안 매운지 물어보고 먹으라고 신신당부한다.

   겸연쩍어하는 식당 아줌마를 뒤로 하고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딱히 말은 하지 않았지만, 중력 이상의 무언가가 끌어당기고 있었다.

  같은 나이 같은 속도로 길을 가고 있었고 서로를 향해 조금씩 눈이 멀어 가고 있었다.


오래전의 일을 회상하면서 써 보았네요.

황금연휴 좋은 일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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