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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희 Sep 16. 2021

몰디브의 세 남자

포옹

  비행기를 3번 갈아타고 그것도 모자라 배를 30분이나 타고 온 섬은 인도양에서도 가장 먼 후드 타스섬이었다.

  딸아이는 무슨 생각인지 사람이 없는 곳이 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 그럼 왜 여기까지 오니 그냥 우리나라 무인도로 가지."

  말은 했지만, 직장생활 2년이 갓 넘은 딸아이, 숨 참기를 얼마나 했을까?

  괜찮은 척, 무심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마음을 들키지 않고 어딘가에 무거운 마음을 놓아버리고 싶었나 보다.

  인터넷 세상이며 쉬지 않고 달려야만 겨우 제자리. 가속으로 페달을  밟고 있는 세상이라도 어차피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일하고. 상처 받고. 로받고.

체바퀴 되는 일상에서 스스로를 책임지는 삶은 얼마나  무거운가?

  덩치 큰 슬픔을 내려놓기 위해 이 먼 곳을 택해 여행을 왔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나는 딸아이의 행동을 조심스레 살피며 말했다.

  " 여기 있는 동안은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치유하고, 나를 위로 하자."

  딸아이의 대답은 유쾌했다.

  " 엄마 그러려고 여기까지 왔잖아."

  이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우리는 숙소에 도달했다.

  바다 위에 지어진 집인데 짐을 풀기도 전에 딸아이가 소리쳤다. 거실 한 부분이 유리로 되어 있는데 바닷속 가오리가 유유히 헤엄쳐 가는 게 보인다.

  딸아이와 나는 유리 바닥에 바짝 엎드려 가오리가 되었다.

  조금 후 이름 모를 열대어의 행 열은  우리의 눈을 천국으로 만들고 그 천국 속에서의 하루는 서서히 저물어 갔다.

  이튿날이 되어 식당에 가기 위해 방문을 나서는데 옆 리조트에서 묵은 외국인 청년 둘이 인사를 건넨다. 둘은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다.

'말이나 통해야 몇 마디 해보지,'

식당까지 10분 걸리는 동안 딸아이와 대화가 이어졌다.

알아들을 수 없는 나는 멋쩍기도 하고 눈이 마주치면 살며시 미소만 지었다.

  식당 앞에서 헤어진 그들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다른 곳으로 갔다.

  잘 생긴 외국 청년에게 잠깐  호감이가 우리가 묵는 동안에

서로를  알아가면 좋겠다고 말하자 딸아이가 하는 말, 둘은 게이고 지금 신혼여행 왔단다. 튀어나올 것만 같은 심한 말을 뒤로하고 될 수 있으면 가는 날까지 만나지 말자고 딸에게 말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동양인이 우리밖에 없어서인지 호기심에 우리에게 계속 말을 걸어오면서 우리나라의 문화나 생활 풍습에 물어보는 듯했다.

또 저녁이면 와인과 과일을 갖다 주기도 했다.

  이탈리아 청년인 그들은 게이라는 것 말고는 몹시도 친절하고 정중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만남은 프랑스 남자였다.

  바닷가에서 와인 파티를 하는데 우리에게 가까이 오더니

한국에서 왔냐고 우리말로 묻는다. 동양인이 한 명도 없는 이곳에서 우린 마치 고향 사람을 만난 듯 기뻤다.

비즈니스 관계로 우리나라 성남시 분당에서 3년 살면서 우리나라 말을 익혔다고 했다. 딸과 나는 마주 보며

  " 우리가 분당에 사는데 고향 사람 맞네."

  동시에 맞장구쳤다.

  이국땅에 와서 프랑스 남자와 우리말로 대화를 하다니

설렘이 습해왔다. 그도 반가웠는지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3년의 이야기를 다 털어놓는 듯했다.

  몰디브의 석양은 우리의 이야기로 빨갛게 물들고 잔잔한 파도 소리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같았다.

  이렇게 4일이 바람처럼 지나가고 우리가 떠나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배 타는 곳까지 3명의 남자가 배웅을 나왔다.

  두 명은 게이, 한 명은 프랑스 남자였다. 기분이 묘하고 어디에 눈길을 두어야 할지 몰랐다. 프랑스 남자와 악수로 인사를 마치자 두 명의 게이가 다가오더니 번갈아가며 나를 안는다. 잘 가라는 인사였다.

  급히 배를 타고 손을 흔들었지만, 뛰는 가슴은 비행기 탈 때까지 이어졌다. 게이에게 안겨 본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 더 폭 안 길걸 잘 생겼던데."

  중얼거리자 딸아이는 뭐라고 할 때는 언제냐며 핀잔을 준다.

  고지식했던 나의 선입견은 물거품이 되고 그들의 행복을 비는 마음으로 기울었다.

  

비행기 창문으로 보이는 몰디브의 저녁노을에 

바다가 와인이 되어 달콤하게 속삭인다.

  세 남자를 잊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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