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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희 Oct 08. 2021

코끼리도 풀만  먹어요

아들과의 대화

 



 나는 지금 아들과 있었던 과거의 시간 여행을 떠난다.

아들을 키우면서 힘든 일도 많았지만, 또 반면에 나에게 웃음을 준 일도 많았다. 지금 이 글은 아들이 나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한 말들을 엮어 보려 한다.

  3살 때의 일이다. 라면이 먹고 싶다고 해서 라면을 끓이고 있는데 곁에서 지켜보던 아이가

  " 엄마. 파도가 치는  것 같아요."

  자세히 보니 라면의 굴곡으로 물이 파도가 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어른이 따라갈 수 없는 것 같았다.

  5살이 되었을 때 이발관이 무엇하는 곳이냐고 묻는다. 남자들이 머리 자르는 곳이라고 말해 주었다.

  며칠이 지난 후에 아들과 길을 가는데 여관이 나왔다.

  " 엄마, 나 여관이 무엇하는 곳인지 알아."

  나는 화들짝 놀라 무엇하는 곳이냐고 물어보았다. 여자들이 머리 자르는 곳이라고 말한다. 나중에 네가 더 크면 정확히 말해주리라. 마음먹고서 혼자서 실실 웃었다.

 ,7살이 되어 넘어지는 바람에 새 바지가 찢어졌다. 집에 들어오더니 아픈 것보다도 바지 때문에 더 심하게 운다. 하도 서럽게 울기에 남자는 아무 때나 우는 게 아니라고 따끔하게 혼내자 들 녀석은 나도 알아요. 하며

  " 태어날 때 한 번,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한 번, 바지가 찢어졌을 때 한 번."

  하면서 더 서럽게 운다. 내가 알려 준 것은 그게 아닌데

갑자기 머리에서 현기증이 났다. 다시 알려줘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할머니를 가르친다며

  " 할머니. 학교 해봐."

  하면은 여지없이 대답은 " 핵교"  한다.

  " 할머니 연필 해봐."

  " 앤 필."

  수 십 번을 해도 대답은 여전하다. 여러 번 하다 보니 너무 힘들었는지 나에게 와서

  " 엄마. 할머니 뇌가 고장 났나 봐.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

심각하게 말한다. 한편으론 안쓰럽고 또 한편으론 기특했다.

  중학생이 되어 사춘기로 성질도 자주 냈지만. 능청도 늘었다. 어느 날  삼겹살을 을 먹고 있는 내 곁으로 오더니

  " 엄마 동족을 먹는 느낌이 어때요."

 머릿속이 하얘지더니 갑자기 삼겹살이 내 살로 보인다.

  "내가 뚱뚱한 게 죄지."

  하면서 식사를 마쳤다. 그런데 그 뒤로 삼겹살을 먹을 때마다 그 말이 생각나 한동안  먹을 수가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들을 볼 시간은 더욱더 없었다.

  그날은 개교기념일이라고 조금 일찍 집에 왔는데 내가 몸이 아파서 제대로 밥도 차려 주지 못했다. 아들 녀석은 나에게 다가와 다리를 주물러 준다고 다리를 펴라고 했다.

  다리를 폈는데 아들 녀석은

  " 엄마, 괜찮으니까 다리 다 펴세요. 다 펴라니까요."

  " 이놈아 다 폈어. 다 폈다니까."

  아들은  그때야

  "어떻게 두 번 주므르니깐 다리가 없냐."

  하면서 나를 놀린다. 짧은 다리 때문에 한참을 웃었다.

  그 뒤 3년이 지난 어느 날 늦은 시간인데 배가 출출했다.

  체중이 고민이 되는 터라 딸아이와 나는 채소 샐러드를 해서 먹었다. 둘이 신나게 먹고  있는데 아들이 방에서 나와 우리를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늦은 시간에 먹는 게 한심하다는 눈총이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 이것 다 채소야."

  둘은 합창하듯 말했다. 그러자 아들 녀석은

  " 코끼리도 풀만 먹어요."

  나와 딸은 아들 녀석의 한마디에 KO 되었으며 채소 속에 코끼리의 모습이 그려져 젓가락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직장을 잡은 뒤 이젠 홀로서기를 한다고 집을 떠났지만, 아들이 한 말은 물레방아처럼 돌고 돌아 웃음의 잔고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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