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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영광

여자가 운전을 하다니

by 송영희


20년 전 작은 연립에서 50평대 아파트로 이사 가게 되었다.

며칠 후 아버님께서 너무 궁금하다며 시골에서 올라오셨다.

나보다 더 좋아하시는 시아버님을 보면서 자식이 잘살아주면 저렇게 좋은 것이구나 생각하였다.

시어머님께서 아픈 관계로 혼자 오신 것을 미안해하시면서

쌈짓돈을 내놓으셨다. 뭐 필요한 것 있으면 사라고 했지만.

나는 이 돈을 받을 수가 없었다.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아버님한테는 전 재산이었다.

용돈 조금씩 보내준 것을 다 찾아왔는가 싶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가 살며시 아버님이 가져온 가방 밑바닥에 다시 넣어 두었다.

오신지 이틀이 되자 시골에 내려가야 한다고 하셨다.

더 쉬었다 가시라고 말해도 나는 너희에게 해준 게

아무것도 없다면서 막무가내로 가신다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동차 키를 챙겨 주차장으로 향했다.

조금 후 차 옆으로 가서

" 아버님. 타세요."

하자 깜짝 놀란 아버님은

" 이게. 어멈 차야?" 묻는다.

" 네. 차예요."

하고 말하자 운전도 할 줄 아느냐고 묻는다.

" 네. 할 줄 알아요. 타세요."

아버님을 뒷좌석에 태우고 큰길로 나아갔다.

10차선 길에서 운전하는 나를 보더니 말씀하신다.

" 가문의 영광일세."

" 우리 가문에서는 여자가 운전하기는 어멈이 처음일세."

" 아버님. 여기서는 여자들도 많이 운전을 해요."

아버님은 이 넓은 길에서 운전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계속 혼잣말로

가문의 영광이라고 반복하셨다.

어이도 없었지만.

강원도 첩첩산중에서 올라오신 아버님.

그곳에서는 여자가 운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기에 내가 운전하는 것이 마냥 신기해 보였나 보다.

한편으론 가문의 영광이라고 여러 번 말해 준 아버님 때문에 우쭐한 기분도 되었다.

시골 가는 버스를 태워 드리고 온 나는 남편이 서운하게 할 때마다 아버님께서 한 말을 끄집어내어

" 어디서 가문의 영광한테 까불어. 아버님에게 전화한다."

하면서 으름장을 놓는다.

그럴 때면 남편은

" 아버지는 괜히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서."

하면서 투덜거린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나를

" 가문의 영광 "이라고 불러 준 아버님의 음성이

20년이 넘게

내 가슴속에 따스한 밥이 되어 모락모락

그리움으로 묻어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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