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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희 Jun 14. 2022

가문의 영광

여자가 운전을 하다니

  


  20년 전 작은 연립에서 50평대 아파트로 이사 가게 되었다.

며칠 후 아버님께서 너무 궁금하다며 시골에서 올라오셨다.

  나보다 더 좋아하시는 시아버님을 보면서 자식이 잘살아주면 저렇게 좋은 것이구나 생각하였다.

  시어머님께서 아픈 관계로 혼자 오신 것을 미안해하시면서

쌈짓돈을 내놓으셨다. 뭐 필요한 것 있으면 사라고 했지만.

나는 이  돈을 받을 수가 없었다.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아버님한테는 전 재산이었다.

  용돈 조금씩 보내준 것을 다 찾아왔는가 싶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가 살며시 아버님이 가져온 가방 밑바닥에 다시 넣어 두었다.

  오신지 이틀이 되자 시골에 내려가야 한다고 하셨다.

  더 쉬었다 가시라고 말해도 나는 너희에게 해준 게

아무것도 없다면서 막무가내로 가신다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동차 키를 챙겨 주차장으로 향했다.

  조금 후 차 옆으로 가서

  " 아버님. 타세요."

  하자 깜짝 놀란 아버님은

  " 이게. 어멈 차야?"  묻는다.

  " 네.  차예요."

  하고 말하자 운전도 할 줄 아느냐고 묻는다.

  " 네. 할 줄 알아요. 타세요."

  아버님을 뒷좌석에 태우고 큰길로 나아갔다.

  10차선 길에서 운전하는 나를 보더니  말씀하신다.

  " 가문의 영광일세."

  " 우리 가문에서는 여자가 운전하기는 어멈이 처음일세."

  " 아버님. 여기서는 여자들도 많이 운전을 해요."

  아버님은 이 넓은 길에서 운전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계속 혼잣말로

   가문의 영광이라고 반복하셨다.

  어이도 없었지만.

  강원도 첩첩산중에서 올라오신 아버님.

  그곳에서는 여자가 운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기에 가 운전하는 것이 마냥 신기해 보였나 보다.

  한편으론 가문의 영광이라고 여러 번 말해 준 아버님 때문에 우쭐한 기분도 되었다.

  시골 가는 버스를 태워 드리고 온 나는 남편이 서운하게 할 때마다 아버님께서 한 말을 끄집어내어

  " 어디서 가문의 영광한테 까불어. 아버님에게 전화한다."

  하면서 으름장을 놓는다.

  그럴 때면 남편은

  " 아버지는 괜히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서."

  하면서 투덜거린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나를

  " 가문의 영광 "이라고 불러 준 아버님의 음성이

20년이 넘게

내  가슴속에 따스한 밥이 되어 모락모락

그리움으로 묻어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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