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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희 Mar 14. 2023

유언장을 품은 당신

나마 있는 삶




내가 쓰러졌을 때야

비로소 당신이 남편인 줄 알았습니다

남아 있는 삶의  사용설명서까지

낱낱이 훑어보고

내 손을  잡았을 때

통장의 비밀번호까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숭아 꽃물을 여러 차례 들였어도

아릅답다 말 한마디 못한 당신이

벽을 보고 울고 있을 때

얼었던 가슴이 해동되기 시작했습니다


참았던 숨을 몰아세우며

옹알이로 시작해서 옹알이로  

끝나기 전에 유언장을 썼습니다

딸에게 나의 장례가 끝나고 나면 아빠에게

주위에 가장 착한 여자와

짝을 맺어줄 것을  유언장에 남겼습니다


그러자  답답한 숨이 뻥 터졌습니다

마음의 평온을 찾은 탓에

그로부터 십 년을 넘게 살고 있습니다

빌려온 시간 속에

생의 표피는 두꺼워지고

유언장을 품은 당신의 눈은

오늘도 흔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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