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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원짜리 미역국

남편이 손수 끊인 미역국

by 송영희


남편은 5년 전부터 내 생일이 되면

백만 원을 봉투에 넣어 준다.

일 년에 한 번 받는 돈이다.

주면서

'생일 축하해.'

말 한마디 없다.

무슨 의무감에서 주는 것 같기도 하고

강아지 밥 던져주듯 나에게 던져주며

자기의 할 일은 다했다는 느낌이

나의 신경을 거슬렸다.

지인들도 서프라이즈라면서

만든 음식을 가지고 와

나에게 생일상을

거하게 차려주는데

남편이라는 사람이 던져준 백만 원이

오늘은 휴지처럼 보였다.

남편에게 나 이돈 가지고 싶지 않으니

"미역국 끓여줘."

하면서 남편에게 돈을 반납했다.

남편은 후회할 텐데 하더니

미역을 내놓으란다.

뜻밖이었다.

물 한잔도 제대로 떠먹지 않는 사람이

과연 할 수 있을까?

나는 미역국을 끓일 수 있는 재료를

챙겨주고 부엌에서 나왔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남편을 보면서

그래 날마다 밥과 국과 반찬을 해주니

쉬운지 알았지 어디 한번 해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골탕을 좀 먹어 봐라 하는

속셈으로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나 미역국 다 끊였으니

나와서 먹으란다.

미역국을 떠서 먹어보니

맹물에다 미역과 파를 몽땅 넣어

끊인 탓에

미역보다 파맛이 훨씬 강했고

소금은 한 수저 넣었다고 했으나

짜서 먹을 수가 없었다.

아니 국간장을 내어 놓았는데

웬 소금을 이리도 많이 넣어 짤까?

냉장고를 다 뒤져서 파란 파는

다 쓸어 넣었나 보다.

ㅠㅠ

나는 남편이 볼세라

남편이 끓인 미역국을 조금 떠서

재빨리 사골 국물과

소고기 다시다를 넣고 끓이니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그리고는 남편은

남편이 끓인 미역국을 떠주었다.

내가 군소리 안 하고 먹는 모습에

"짜고 맛도 없는데 맛있게 먹네."

"당신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끓인 미역국인데

맛있게 먹어야지."

나의 말에 남편은

나는 도저히 못 먹겠다.

돈 버는 게 쉽지 음식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며

미역국을 내 앞으로 밀쳐 놓았다.

최선을 다한 남편의 모습이 안 돼 보여서

조금 전에 내가 먹었던 미역국에 넣은 것처럼

소고기 다시다와 사골 국물을 넣고

살짝 끓여 주었다.

남편은

" 와! 요술 손이네.

어떻게 했는데 이렇게 맛있냐면서

한 대접을 뚝딱 비웠다.

밖에서 들어온 딸에게 까지

아빠가 미역국 끓였다고 자랑을 했다.

"백만 원짜리 미역국 먹어볼래."

남편의 말에

영문도 모르는 딸아이는

신기한 듯 아빠를 쳐다보며

"이제 김치만 담그면 되겠네."

"그럼 그럼."

모처럼 식탁의 온도는 봄으로

치솟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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