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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희 Jul 20. 2021

엄마의 아줌마

치매

  ''아줌마. 누구요.''

  방문을 열고 들어간  나에게 엄마의 첫마디.

  어떡할지 몰라 방문을 닫는 것도 잃은 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 철썩 주저앉아 엄마의 눈을 바라보며, 잊어버린 기억 속에 엄마를 찾기에 연신 말하였으나 이미 그곳에는 나의 엄마는 없었다.

  나만 보면 하던 말 '이제오냐' '밥 먹었냐' '영희냐' 금방이라도  나를 부를 것  같은 소리에 수십 번 나를 각인시켜보지만, 엄마는 엄마를 버렸다. 단 한 번이라도 다시 들어 보았으면 간절한 바람은 치매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잠식해버리고 내 가슴은 굳을 대로 굳어져 빈 허공에 울음으로  가득 찼다.

  ''아줌마, 울지 마.''

  그리고 나 개 밥 줘야 하니까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세상에 나를 기억 못 하면서 집에 두고 개 생각은 나나 보다.

  치매가 심해져서 혼자 생활하시던 엄마를 남동생이 모셔 오면서  아파트 생활이라 같이 지내던 개는 시골집에 놓고 왔다. 그래서인지 만나는 사람마다 개밥 줘야 한다며 집에 데려다 달라고 말한다.

  그래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던  것은 그 누구도 아닌 개였다.  엄마의 머릿속에는 온통 개 생각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생활이 바빠서 제대로 챙기지 못한 나보다도 엄마 곁에 같이 있어 준 개에게 한없이  고마웠다.

  이제 내가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같이 있는 시간이라도 먹이고 씻기는 일이었다. 그런데 쉽게 생각했던 일들이 쉽지 않았다.

  치매가 점점 심해지면서 한없이 먹으려  들고, 시도 때도 없이 먹으려 들고, 대변과 소변을 가리지  못할 때도  종종 있었다. 사람만 없으면 밖으로 나가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리 지르는 일도 잦아지고, 씻기는 일도 동생의 도움이 없으면 쉽지 않았다. 나는 가끔 와서 한다지만 곁에서 시중드는 올케가 힘들 것이 뻔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지금에야 요양병원이 많고 병원에 보내는 사람도 많지만,

30년 전에는 부모를 요양병원에 보내는 것은 손가락질받는 일이었다. 올케는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하는지 어차피  

자기가 할 일이라고 말하였다.

  올케의 너그러움을 뒤로하고 엄마를 놓고 떠나는 나는 올케에게 죄인 아닌 죄인이었다.

  그 뒤 힘든 일도 많았지만, 말없이 엄마를 모셔주었고 2년 8개월이 지난 어느 봄날 나를 아줌마로 안 채 땅 속에 온기를 묻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왜 그렇게 마음이 편했던지, 한 평생 고생 속에 쉼 없이 살아온 엄마에게 죽음은 또 다른 안식처라고 생각이 되었다.

  엄마 장례식 날 엄마가 남겨 준 마지막 밥이라며 지인이 숟가락을 쥐어 줘 밥을 먹는데 두 그릇을 먹고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아 엄마가 좋아했던 바나나 더 먹고서야 엄마의 영정 앞에 앉아 이별을 고했다.

  '세월이 접히면서 그리움의 깊이는 더 하겠지만, 엄마가 흘렸던 땀과 눈물이 나에게 자양분이 되고 에너지가 됐어요. 여기 일은 다 잊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지내 엄마.'

  속삭이며 나오는 나는 엄마가 가장 아끼는 아줌마였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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