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에서 봉자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봉자야''
불렀는데 모른 척하고 지나간다. 나는 잽싸게 앞으로 가서
''봉자야, 어디 가는데 그렇게 바빠?''
하고 따지듯 물었다. 그러자 작은 목소리로
''너 사람 있는 데서 내 이름 크게 부르지 말라고 했지.''
''아, 참 잊어버렸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언제나 봉자만 보면 사람들이 있건 없건 크게 불렀다. 그러면 봉자는
'저, 가시내 또 왜 저래, 내 이름 가지고, 어휴.'
하며 한숨을 내쉰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봉자의 이름을 가지고 많이 놀렸었다.
그러던 봉자가 몇 해 전에 남편 사업이 어려워져 집까지 남의 손에 넘어가고 나한테 말 한마디 없이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봉자를 아는 지인들에게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속상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마음으로나마 어디서라도 잘 살아 주길 바랐다.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봉자의 음성이었다.'
어머나, 세상에. 어디니 어디야.''
바로 봉자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봉자도 보고 싶었다면서 자기가 사는 주소를
알려 주었다. 나는 다음날 전철과 택시를 번갈아 타면서 봉자에게 갔다. 찾아간 곳은 커다란 빵 가게였다. 봉자는 빵 가게 사장이 되어 있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우울증까지 겪다가 제 빵 기술을 배워
새로운 삶을 찾았고, 빵을 만드는 시간만큼은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겪고 지금은 행복한 봉자를 보니 나도 무척 좋았다.
우리는 오랜만에 어린 시절의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둘이서 참고서 한 권을 사서 엄마에게 돌려 보여 주며 남은 돈으로 호떡을 사 먹은 일, 공설운동장에서 학교 행사를 마치고 버스 타고 갈 돈으로 붕어빵을 사 먹은 일, 체육복 선배에게 물려 입고 돈 타내서 며칠간 찐빵 사 먹은 일.
''지금 생각하니 그때부터 너와 나는 빵을 좋아했어.''
내가 말하자 봉자는
''그러니까 너와 나는 지금 빵빵하잖니.'' 한다
우리의 웃음은 빵 가게 안을 가득 메웠다.
봉자는 토요일이면 단팥빵을 구워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했다. 사회의 한 귀퉁이에서 소리 없이 작은 빛이 되어주는 내 친구 봉자에게 찬사를 보내며 나 또한 봉자로부터 용기 있고 베푸는 삶을 배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 마음은 막 구워낸 빵만큼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