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았던 아버지와의 이별
눈보라는 길 잃어 같은 자리를 서성이고
고양이 울음으로 어둠을 짓는다
죽음과 이별이 무언지도 모른 채
바람은 세상에 없는 음성을 전해준다
밀랍처럼 굳은 몸이 녹아내리더니
불빛을 점멸시켜버렸다
계절과 계절이 접히면서
헐거워진 아버지의 얼굴
날 선 바람은 나의 가슴을 토닥이고
커다란 나무는 그림자 하나 남기지 않은 채
잘려나갔다
잘려나간 흔적 속에
얇은 종잇장 같은 아버지
비누거품 되어 사라지고
나는 그 거품을 잡기에 골목길을 헤집는다
땅거미보다 더 무겁게
가라앉은 아버지의 음성
온몸에 구멍 아닌 구멍이 뚫린 채
허허로움에 숨죽여 파도 같은 신음을 내고
아버지의 얼굴이 이끼처럼 차오르면
나는 아버지의 낡은 잠바에 얼굴을 묻는다
시작노트
막내 여서인지 아버지의 무릎은 언제나 나의 의자였다 술을 드시면 늘 종이봉투에 샌비과자를 사와 주시곤 하였다
몇 년을 병고로 아프시더니 내가 초등학교 4학년에 돌아가셨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끼처럼 차오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잊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느 날 친구의 아버지와 마주하고 집에 돌아와
유품으로 남긴 아버지의 낡은 잠바를 바라본다
어머니는 버리라고 야단쳤지만 나는 나의 옷장 밑에 깊숙이 숨겨놓고 아버지가 생각날 때마다 얼굴을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