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심부름

청첩장

by 송영희

몸이 편찮으신 아버지는 3일째 붓으로 청첩장을 쓰시더니

보자기에 곱게 싸서 나에게 주었다.

아랫마을에 사는 아저씨에게 가져다주라면서 심부름 값

200원과 주소와 이름, 약도까지 세밀하게 적어 나에게 건넨다. 아픈 아버지를 위해 무언가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어린 마음에 좋았다.

너무 어려 차를 타고 가는 것은 위험하니 시간이 걸려도

걸어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아버지를 따라서 갈 때는 버스를 타고 가서인지

그리 멀지 않은 길이 걷고 걸어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다.

2시간 남짓 걸었을까 낯익은 마을 어귀가 보이자 나는 기쁜 마음에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뛰는 것도 잠시뿐 미끄러지는 바람에 길 옆 도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동네 사람이 구해주었다.

그러면서 나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나를 그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생쥐 꼴이 된 나는 보따리를 내밀면서 아버지 심부름 왔다고 말하자 아저씨는 어린것이 수고가 많았다면서 따스한 아랫목으로 이끌더니 젖은 옷을 말려주시고 귀한 인절미를 내오셨다.

나는 인절미를 허겁지겁 먹다가 갑자기 넘기지 못하고 아저씨만 바라보았다. 아저씨가 펼친 보따리는 검은 종이만

한 보따리였다. 아까 물속에 빠졌을 때 먹이 다 번진 거였다.

아버지의 창백한 얼굴이 겹쳐지면서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나는 아저씨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아저씨는 아버지 몸이 편찮으신데 이 많은 것을 썼다면서 놀라워하셨다.

그러면서 물에 빠진 것 아버지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아저씨는 집에 사람이 많으니 여럿이 쓰면 금방 쓸 수 있다면서 나를 안심시켰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저씨는 아버지의 죽마고우 친구셨고 큰 딸이 결혼 날짜가 잡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형편에 아버지가 아픈 몸으로 청첩장을 써 주신 거였다.

아저씨가 싸주신 인절미 보따리를 손에 들고 집에 오는 나는 금의환향이라도 한 것처럼 발걸음이 가벼웠다.

7살 내 나이에 무거운 것도 잠시뿐 집에 와보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말다툼을 하고 계셨다. 그 어린것을 먼 곳까지 심부름 보냈냐며 아버지에게 뭐라고 하셨다.

나는 가지고 간 인절미를 내놓으면서

''이것 먹고 싸우지 마세요.'''

나를 본 어머니는 나를 다독이며

''그래, 많이 컸네. 그 먼 데까지 심부름을 다 하고.''

엄마는 눈물을 훔치시더니 내가 가져온 떡 보따리를 들고

''이렇게 무거운 것을 그 먼 데서 어떻게 가져왔어. 우리 딸 힘이 장사네.''

하시면서 내 고사리 같은 손을 만져주셨다.

오랜만에 우리 집은 인절미로 허기를 달랬고 나는 뿌듯함에 젖어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던 뒤에도 아버지는 힘든 일을 종종 시켰고, 그러는 아버지가 밉고 싫었다.

2년이 지난 뒤 아버지의 건강은 더욱 나빠져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시간이 겹쳐지면서 아버지가 그토록 힘든 일을 시키신 것은

비탈진 곳이나 후미진 곳이나 출구를 찾을 수 있는 나의 강인함의 바탕이 되었으며 아저씨의 너그러움은 내 가슴속에 꺼지지 않은 불씨가 되어 삶의 지표가 되어 버렸다.

아저씨처럼 나도 친구에게 불씨가 될 수 있나 가끔은 내가 나에게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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