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시간이 많이 남았다. 남편이 뒤늦게 공부하는 바람에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우선 아이들 학원비부터 걱정이 되었다. 어떡하나 고민 끝에 미용을 배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퇴근한 남편에게 말하자 배우기만 하면 내가 직장을 그만둘 거라며 생각 이상으로 반대를 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더 크면 하라고 했다. 생각 끝에 남편에게 비밀로 하고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 미용학원에 등록했는데 학원비며 재료비가 내 생각과는 달리 많이 들었다. 비자금을 탈탈 털어 배우는 나는
열심히 해서 돈을 벌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얼굴만 있는 마네킹을 샀다. 마네킹에게 가발을 끼워 머리 자르는 연습을 한다. 연습 후 머리를 감기고 욕조에 두고 나왔다. 조금 마르고 나면 치워야지 했던 게 잊어버렸다. 그날따라 남편은 술에 취해 늦은 시간에 들어왔다. 씻는다고 화장실에 가더니 기겁을 하면서 나온다.
''사람 머리통이 욕조에 있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더니 소파 위로 털썩 주저앉으면서 경찰에 신고하란다.
나는 그때서야 화장실 문을 살며시 열어보니 머리를 산발한 여인의 머리통이 욕조에 둥둥 떠있는 게 아닌가!
초등학교 다니는 딸아이가 머리 감긴다고 가지고 놀다가
받아 놓은 욕조의 물속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내가 봐도
섬찟한데 처음으로 본 남편이 혼비백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여보. 미안해. 사람이 아니고 마네킹 머리야.''
남편은 왜 저런 것이 우리 집에 있냐면서 소리친다.
사실은 당신 몰래 미용을 배우러 다녔다고 말했다. 얼굴이 백지장이 된 남편 뒤로 나는 하염없이 웃음이 나왔다.
남편 몰래 킥킥대고 웃는데 남편은 화난 얼굴로 비닐봉지 큰 것을 찾더니 그 마네킹 머리를 넣어 달라고 했다. 비닐봉지 윗부분을 단단히 묵더니만 아침 출근 때 가지고 나갔다. 나가면서 하는 말이 꿈자리 사나워서 한잠도 못
잤다면서 마누라가 철이 안 들어서 안 해도 될 고생을 한다며 투덜거렸다.
마네킹과 가발까지 빼앗긴 나는 어쩔 도리 없이 미용을 그만두어야 했다.
돈 번다는 꿈은 사라지고 남편이 혼비백산하며 놀란 모습만 머릿속에 웃음보따리로 남아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그래 학원 못 보내면 어때, 아직은 저학년이니까 내가 가르치면 되지.''
생각하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내 생각에게 최면을 걸고 또 걸었다.
눅눅했던 마음이 맑은 창공을 나는 것처럼 가볍고 상쾌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소리가 가깝게 들리며 나에게 빨리 공부하라고 당부한다.
그때부터 나는 물비늘처럼 반짝이는 아이들의 과외선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