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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희 Jul 26. 2021

금자

죽음

  고등학교 1학년 때 다섯 명은 늘 붙어 다녔다.

  어느 날 전학 간다는 말 한마디 남기고 떠난 금자와 토끼풀 엮어 팔찌 만들고 오 총사가 되던 날 20년 후 다시 만나자는 곳은 학교 뒷산 느티나무 아래였다.

  졸업 후 사는 게 바빠서일까 아님 시간을 털린 것일까 한 통의 편지를 받고서야 20년이 지난 걸 알았다. 모두가 연락되었는데 금자만 중간에 전학 가는 바람에 소식이 되지 않는다며 나에게도 소식을 전해왔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날은 꼭 올 거야 다짐하면서 그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회비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 한 가지였다. 약속한 날이 되어 김밥을 싸서 그곳에 가보니 순덕이는 김치 부침개. 향자는 잡채. 봉덕이는 떡볶이로 멍석을 깔고 있었다.

  발등으로 떨어지는 추억을 털어내며 표정들이 나뭇잎에

걸려 왁자지껄할 때 다가오는 남자 한 명

  ''저는 금자 남편이래요.''

  ''금자는요.''

  우리는 모두 금자 남편을 향해 복창했다. 고개를 숙인 그의 입에서는

  ''석 달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더래요.''

  지근지근 입술을 깨물며 내민 보따리는 만두였다. 금자가 무척 좋아했던 만두

  '언제나 실컷 만두를 먹어 볼까.'

  어려웠던 시절 늘 했던 말이 가슴에 박히면서 금자의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남편의 성화에 금자의 유언을 한입씩 베어 물었다. 지나간 시간의 길이만큼 가슴이 무너져 내렸고 슬픔이 고등어 통조림처럼 쏟아져 바닥까지 흥건했다.

  시간의 두께와 어둠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강원도 산골로

들어가 이름마저 지워버린 금자.  젖은 슬픔에 만두는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우리는 금자 남편으로부터 별이 돋을 때까지 금자의 지난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해가 바뀌자 달력에 친구를 만나는 날이라고

빨간색 볼펜으로 표시를 해두었고 자기는 만두를 좋아하니

만두를 가지고 가면 된다고 백번도 더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이야기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마치 금자가 곁에 있는 듯했다. 부지런한 금자 덕에 마을에서 두 번째로 땅도 많고 농사도 많이 짓는다고 했다.

  헤어진  후 그는 두 번째 금자가 되었다. 일 년에 두 번 만나는 모임도 같이하고 아이들 소식도 나누면서 정겹게 지냈다. 우리는 번갈아 가며 금자의 빈자리를 조금이나마 메우려고 노력하였고 혹 힘든 일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탐색도 했다.

  금자가 죽은 뒤 7년이 지나 그는 친구의 주선으로 두 번째 결혼을 했다. 우리는 모두가 가서 축하해 주었고 지금은 모임 때 부부가 같이 나온다.

  나는 지금 창가에 앉아 옥수수를 먹고 있다. 금자 남편이 보내준 옥수수에서 금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남편 잘 챙겨줘서 고마워.'

  창가에 새소리가 오늘은 유독 정겹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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