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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희 Jul 26. 2021

젖은 슬픔

어둠의 깊이

  전학 간다는 말 한마디 남기고 떠난 금자

  토끼풀 엮어 팔찌 만들고 오 총사가 되던 날

  20년 후 다시 만나자는 곳은 학교 뒷산 느티나무 아래였다


  사는 게 바빠서일까 시간이 털린 것일까

  한 통의 편지를 받고서야 20년이 지난 걸 알았다

  회비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 한 가지

  김밥을 싸서 집에 가보니

  순덕이는 김치 부침개 향자는 잡채 봉덕이는 떡볶이로  

  멍석을 깔고 있었다

  

  발등으로 떨어지는 추억을 털어내며

  표정들이 나뭇잎에 걸려 왁자지껄할 때

  다가오는 남자 한 명

  ''저는 금자 신랑 이래요.''

  금자는 요ㅡㅡ

  복창이 하늘을 메웠다

  ''석 달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드래요.''

 

  지근지근 입술을 깨물며 내민 보따리는 만두였다

  금자가 무척 좋아했던 만두

  지나간 간의 길이만큼 가슴이 무너져 내렸고

  슬픔이 고등어 통조림처럼 쏟아져 바닥까지 흥건했다

  시간의 두께와 어둠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강원도 산골로 들어가 이름마저 지워진 금자

  금자의 유언을 한입씩 베어 물었다


  젖은 슬픔에 간간히 끼어드는 새 울음도

  나뭇가지에 밀봉되어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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