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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희 Aug 02. 2021

아버지가 밥에 물 말았어

쌀밥과 장조림

  내가 7살에는 하루에 두 끼 먹는 것도 버거웠다.

  아침은 강냉이 죽이었고 점심과 저녁은 보리밥이 전부였다.

  몸이 약한 아버지는 자주 아프셨고 밥을 제대로  못 드신 탓에 밥을 할 때는 언제나 보리쌀 위에 쌀을 살짝 올려 아버지만 쌀밥을 퍼드렸다.

  동생은 아버지상이 다 물릴 때까지 문틈 사이로 아버지의 식사를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항상 쌀밥을 남기셨다. 그러면 으레 것 남동생 몫이었다. 막내라는 이유였다.

  밥상을 물리면 남동생은 아버지 상에만 놓은 장조림 반찬과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지켜보는 나도 먹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다. 왜냐고 물었더니

  ''아버지가 밥에 물 말았어.''

  어린 마음에 얼마나 고 싶었으면 저리 울까! 나는 엄마에게 혼나니까 울음을 멈추라고 말했으나 동생은 들은 척도 안 했다. 너무 크게 운 나머지 아버지가 방에서 나오시더니 겸연쩍은 얼굴로

  ''아버지가 속이 답답해 물 말아 버렸으니 같이 먹자.''

  동생의 손을 끌었지만, 동생은 더 크게 울었다.

  아버지는 아무런 말없이 밖으로 나가시더니 따끈따끈한 만두를 사 오셨다.

  돈도 없으면서 만두를 왜 사 왔느냐는 성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생과 내 입에 번갈아가며 만두를 넣어 주셨다. 처음으로 먹어보는 만두는 밥보다 몇 배나 맛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버지가 가장 아끼시는 라디오와 맞바꾼 것을 알았다.

  철이 없어서 라디오가 중요한지를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라디오가 얼마니 중요한지를 알았다. 세상 돌아가는 모든 것이 이 작은 상자에서 나오다니 빨리 커서 돈을 벌면 제일 먼저 아버지에게 라디오를 사드려야지 마음먹었는데, 아버지는 시름시름 아프시더니 그 이듬해 봄 시간 밖으로 나 앉으셨다.

  너무 어려서 아버지가 안 계신 게 무엇인지도 모를 나이에 나는 아버지를 잃었고 크면서 아버지의 그늘이 얼마나 큰지를 알았다.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 두 대와 라디오

세대가 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라디오 한 대로 온 식구가 모여 경청하고 했는데, 가끔은 그때의 생각에 가슴 시릴 때가 있다.

  지금도 쌀밥과 라디오와 만두는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가슴 아픈 아버지 사연을 전해준다

  가끔 내 인생의 여백 속에 아버지의 음성을 깔리면  소리 없이 등으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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