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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희 Jul 22. 2021

노란 자물쇠는 채워지고

세관에서 있었던 일

  10년 전 남편과 함께 호주와 뉴질랜드로 여행을 갔다.

  외국여행이 처음인 남편은 광활한 초원과 맑은 공기에 푹 빠져있었다.

  모든 가축은 따로 먹이를 주지 않고 방목하면서 기르는 것을 보고 대자연의 신성함을 온몸으로 느낀 남편은 가축에서 축출한 몸에 다는 약을 사기 시작했다. 가는 곳마다 약을 사기에 만류도 해보고 싫은 소리도 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산 약들은 커다란 여행 가방에 가득  찼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했던 대로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짐 찾는 곳에서 올라온 남편의 가방에는 커다란 노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남편의 얼굴은 굳어졌고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가방을 가지고 내 곁으로 오자 삐삐 소리가 났다. 짐 찾는 곳에서 멀어지면 소리가 나기에 나는 남편에게 짐 찾는 곳에 바짝 붙어 있으라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한편으론 창피하고 또 한편으론 밉기도 했다. 남편 역시 사람들 틈에서 창피한지 얼굴이 빨개졌다.

  조금 후 세관원이 오더니 남편을 데리고 갔다. 나는  뛰어가 귓속말로

  ''여보. 걱정하지 마, 내가 전화로 다 말해 놨으니까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돼.'' 하고 안심을 시켰다.

  20분 후에 내 곁으로 온 남편은  상기된 목소리로 나에게 말한다. 세관원이 남편의 주민등록번호를 치자 컴퓨터에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또 여행에서 얼마를 썼는지 다 나왔단다. 세관원은 상업성이 없고 여행이 그쪽으로 처음이니 세금은 십 분의 일만 내면 된다고 친절하게 말해 주었단다.

  ''당신이 정말 이야기해 놨어. 세금을 아주 적게 냈거든.''

  ''왜, 세금을 적게 내서 속상해?''

  내가 사지 말라고 해도 그렇게 사더니 문제를 일으켰다며 핀잔을 주었다.

  남편은 오늘을 교훈 삼아 앞으로 외국여행 가면 꼭 필요한 것만 사자고 말한다. 이제 당신하고 여행 가는 일은 없을 거라며 손 사레를 치자 내 손을 끌어다 손도장을 찍는다.

아마도 자신에게 한 약속이 아닌가 싶다.

  법을 어기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남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거짓말이었다.

  처음으로 내 등 뒤에 숨은 남편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상처에 스미는 양약처럼 위로가 내 안에 도포되었다.

  비난을 일삼던 나, 이제는 가슴에 배려라는 메시지를 넣고

시간 맞춰서 알람을 울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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