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에서 허물어지고 있는 것들, 머릿속을 채우는 복잡한 생각들, 이제껏 수도 없이 겪어왔던 불안 그리고 또 다른 불안. 그것들의 정체를 알 길이 없어 더욱 괴로운 나날들. 허한 마음을 채우려 되도 않는 감정들을 만들어내고 흘러가 버린 것들을 다시 수혈하듯 글을 씁니다.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내다가도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막돼먹은 마음을 먹기도 하고 그저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살다 흩어져버리는 삶 또한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무뎌진 건지 완벽하게 무너져버린 건지도 가늠이 가지 않는 요즘이 퍽 무섭게 느껴져요. 누군가가 “정신이 가난해지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다.”라는 이야기를 해줬었는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예전엔 우울함으로나마 빈틈을 채울 수 있었는데 이젠 그것조차 어렵습니다.
아직 죽지는 못했어요. 이번에는 꼭 죽어야지 했던 날에 비가 왔고, 조금 더 날씨가 좋아지면 꼭 죽어야지 했을 땐 찬란한 햇빛이 너무 아름다웠고, 따뜻한 바람이 부는 날엔 이렇게 좋은 날 죽어버리는 게 억울하더라고요. 막상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이구나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무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가다 보면 정말 괜찮아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선. 날이 좋을 때 죽어야지, 하는 게 아니라 이 여름의 풍경을 또 한 번 눈에 담고 싶단 생각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