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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세시 칼리 Apr 07. 2024

하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 잘 놀고 잘 쉬기 위해

여행과 휴식, 그리고 체력

논술 공부방을 시작하기 전에도 일은 계속했었고, 일을 하지 않는 삶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았다.

물론 새로운 일을 알아보기 위해 실업급여를 받는 몇 개월을 제외하곤 말이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연차라는 게 있었다.

입사하니 회사에서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연차에

2년에 1개씩 연차 수가 늘어나 오래 근무할수록 연차의 개수도 늘어났다.

아이를 낳고 출근을 하면서부터는 여름휴가를 제외하고 나를 위한 연차보다는 아이 어린이집 행사

혹은 아이가 아파서 부득이하게 연차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입사 초기에는 남아있는 연차를 연말에 돈으로 정산을 해줬었는데, 어느 순간 회사는 남아있는 연차는

다 소진해서  쓰라고 했다. 연차비를 줄이기 위함이었을 거다.

남아있는 연차를 쓰기 위해서라도 아이와 여행을 자주 다녔었다.

워낙 집에 가만히 있는 걸 답답해하기도 하고, 아이가 있으니 여기저기, 이것저것 보여주고 경험해 주게 하고 싶은 마음에 주말이면 가까운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라도, 하다못해 공원에 돗자리 펴고 앉아있다가 오기라도 했다.


종종 2박 3일로 지방 여행을 다니기도 했는데 남편이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장롱면허인 나는 버스로,

ktx로, 비행기로 여러 교통수단을 이용해 여행을 다녔다.

뚜벅이도 아이를 데리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주로 기차를 타고 지방으로 다녔다.

용산역이나 서울역에서 ktx를 탔는데 기차를 타기 전에 기차 안에서 먹을 주전부리들을 역 내에 상점이나 편의점에서 사곤 했다.

아이는 아직도 기차 여행에 관한 추억을 떠올릴 때면 기차 안에서 먹으려고 샀던 용산역 찰보리빵과 호두과자, 편의점에서 산 맥반석 달걀, 소시지, 뽀로로 밀크맛 음료, 바나나 우유를 떠올리곤 한다.



기차를 타기 전 우리는 으레 이런 먹거리를 사곤 했다.


기차 호수를 찾아 기차에 타면 재빨리 배정된 좌석 번호를 찾는다. 내 좌석을 찾으면 짐은 짐칸에 올린다.

그전에 기차 안에서 먹을 것들을 가방에서 꺼내

좌석 접이식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아이는 창가자리에 앉는다.  



 무사히 기차를 탔다는 안도감과 이제 몇 시간은 편안히 앉아서 아이와 수다 떨고 사 온 간식 하나씩

까먹으로 창밖 풍경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아이도 나도 기차 안에서의 시간이 즐거웠다고 생각하는 거 보면 어쩌면 기차여행은 기차 안에서 먹는 재미로 다녔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직장 생활을 마치고 논술 공부방을 오픈했다.

사업자등록을 하니 급여 생활자에서 개인사업자로 일하게 된 것에 기분이 묘했다.

사실 학생들을 모집하고, 홍보하고 수업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직장 생활할 때보다 당연히 수입은 적어질 거라 생각했지만, 아이가 어리니 아이 학교 등하교도 시켜주고 간식도 챙겨주며 집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제일 큰 장점이라 생각했다.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정해진 시간에 출, 퇴근하는 직장인들보다 내가 일할 시간을 정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처음 오픈 했을 땐 물론 학생이 없었다. 홍보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아파트 게시판에 2주간 전단지를 붙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아파트 단지에 사는 초등학생 한 명이 등록을 했다.

'야호! 드디어 나에게도 첫 제자가 생기는구나!'

기쁘고 설렜다.  첫 수업을 개시했다.

논술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을 하기 때문에 학생 한 명 수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시간적 여유가 많을 줄 알았지만 오산이었다.


초등학생 딸은 일찍 하교를 하고, 등, 하교를 시켜줘야 했기에 오전 한두 시간 외엔 내 자유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오전 시간에는 틈틈이 수업 책을 읽고, 수업 준비를 해야 했다. 집에서 수업을 하니 집안일도 해야 하고, 아이가 집에 오면 식사도 챙겨야 했다. 생각보다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집에서 일한다는 것의 단점도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이 늘어났다. 하루에 수업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상대적으로 내가 누릴 수 있는 내 시간이 줄어들었다. 자영업자들이 쉬는 날이 없이 일한다고 하듯이 나도 토요일에 보강이 있으면 수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상대적으로 토요일에 수업하는 날이 많아지니 1박 2일 여행 가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토요일은 일했으니 일요일 하루는 쉬고 싶기도 했다.


코로나 19가 터지면서 여행 다니는 횟수는 더 줄었다. 자영업자는 연차가 없다.

여름휴가 한번 가려고 하면 수업을 다 미루고 보강을 해야 하는데, 보강을 하기엔 체력적으로 내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작년 여름휴가는 안 가고 넘겼다.

학부모들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휴가 간다고 보강 날짜를 잡겠다고 알려야 하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과 태도가 최근에 내 체력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 <지중해 부자>라는 책을 읽었는데, 책에서

지중해 부자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체력부터 키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무슨 일을 하긴 해야 하는데 엄두가 안 나거나 귀찮은 사람, 작심삼일로 쉽게 무너지고 조금 하다가 딴짓을 하고 싶은 사람, 마음만 앞서고 행동은 뒷전인 사람... 모두 체력이 약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부자가 되려면 어느 분야에서 성공을 거둬야 하는데 그때까지 버티려면 어마어마한 체력이 필요하고 그래서 부자들은 그런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고 말한다.


어쩌면 나도 체력이 약해서 일 수도 있겠다 싶다.

체력이 좋으면 수업을 더 많이 할 수도 있고, 그러면서도 여행도 다니고,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여름휴가는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 거다.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내 수입도 어느 정도 안정화 되었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과 휴식 시간

즉, 나와 가족을 위한 시간이 부족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직장인들만 워라밸의 중요성을 외치는 게 아니라, 자영업자도 워라밸이 중요하단 걸 느끼게 됐다.

그래서 올해 2024년에는 수업을 늘리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되도록이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늘려보려고 한다.

수업이 없는 주말에는 예전처럼 여행도 다니고, 나들이도 다니고 싶다. 운동도 다시 시작했다.

놀기 위해, 잘 쉬기 위해서 운동을 한다.


요즘 들어 주위를 살펴보며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는 생각이 전보다 더 많이 든다.

앞만 보며 달리다 보면 소중했던 것들을 자꾸 잊어버리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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