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생각
공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이 단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참 극과 극이다. 어떤 사람들은 공부라면 치가 떨리도록 싫어하고, 어떤 사람들은 참 좋아한다. 그런데 공부란 무엇일까? 공부가 아무리 중요하다지만 도대체 왜 해야 하는 걸까? 단지 대학에 가기 위해서만은 아니리라.
내가 이런 나의 모습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얘기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내게 필요가 느껴지지 않는 것, 내가 하기 싫은 것은 안 한다. 예나 지금이나 이것 하나만큼은 바뀌지 않는다. 부모님이 내게 공부를 하라고 얘기를 하셨다면 난 바로 안 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옛날부터 내게 공부란 “할 일”이었다. 그땐 공부라고 얘기하기도 했지만, 지금 보면 우리가 흔히들 얘기하는 공부라고 하기엔 좀 그렇다.
독서, 코업 숙제(독서록, 일기, 말씀 암송 등등),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조금씩 하기 시작한 수학(강의 듣고 문제 풀기), 영어책 조금씩 읽기.
정말 이게 다였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고 생각하는 공부라고 보기엔 가장 마지막 것과 그 전 것이 가장 알맞을 것이다. 그런데 난 공부라는 단어에 대한 그런 정의도, 그 모습도 조금 바꿔보고 싶다.
국어사전에 공부란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이라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다음 말은 내가 굉장히 공감하는 내용인데, 이이 선생님의 말씀이다.
“요즘 사람들은 배움이 나날의 생활에 있음을 알지 못하고 까마득히 높고 멀어서 (보통 사람으로서는) 행하지 못할 일이라고 헛되이 생각한다.”
-이이, <격몽요결>
공부는 꼭 책상 앞에 앉아 교과서나 교재를 펼쳐서 보고, 강의를 들으면서 노트 필기를 하거나 개념을 외우거나 문제를 푸는 데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공부란, ‘학문과 기술’이 모두를 포함하여 배우고 익힌다는 뜻이다. 학문, 즉 수학, 과학, 영어, 국어, 사회, 역사뿐만 아니라 기술, 즉 미술이라든가 악기 연주하는 법, 심지어 사람을 대하는 법, 잘 대화하는 방법, 집안일을 하는 방법 등 이런 것들도 포함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책상 앞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지 않았고 그 시간 동안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이렇게 저렇게 얘기하면 그 사람이 상처받는다.’
‘아름다운 자연은 아프다고 말 못 하지만, 우리가 알아서 소중히 여겨야 한다.’
‘어른들께는 공손하게, 친구들에게는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바이올린·피아노를 배우며) 선생님이 내게 하라고 하신 것은 아무리 어려워 보여도 내가 할 수 있기 때문에 시키신 것이다.’
‘(뜨개질을 하며) 땀이 뻘뻘 나도록 끝까지 했더니 결국 첫 매듭을 짓는데 성공했다.’
‘(탁구를 배우며) 가끔은 기다리지 말고 쳐야 한다.’
‘(정책제안서 및 발표를 준비하며) 이 글을 읽고 이 말을 들을 사람은 어떤 것에 집중할까, 어떤 단어를 써야 내 말의 의미를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이것을 읽고 듣는 사람이 결국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까 하나하나 다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론 이런 생각들이 다 즉각적으로 떠오른 것은 아니다. 그러면 철학자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가끔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지 하며 질문하다 보니, 왜 이런 걸 내가 하게 됐지 질문하며 생각하다 보니 얻게 된 깨달음과 떠오른 생각들이다.
이런 깨달음을 내게 주는 시간들이 과연 노는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삶의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서도 여러 의미를 생각하고, 삶의 사소한 모습이나 나의 사소한 행동, 스쳐 지나가는 모든 글, 말, 행동, 풍경에서 나에게 필요한 교훈과 배움을 얻어내는 나의 습관은 노는 시간에서 얻어졌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배운 것이 이렇게나 많은데 놀았다고 하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쩌면 그래서 누군가는 놀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다 보니 수학을 배우고 나선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는 데 도움이 되는 학문 같다고, 과학을 배우고 나선 세상이 더 신비로워 보이게 해주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나에게는 확실히 수학이나 과학은 딴 세상 언어 같다. 굉장히 추상적이랄까). 또 국어, 영어를 배우고 나선 언어의 마법에 매료되고, 역사를 배우고 나선 사람들을 더 공감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얘기하고, 사회를 배우고 나선 사람 사는 모습을 더 알게 되는 학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싫어하는 과목도 할 만한 이유를 찾으려는 것도 있었다. 그 과목들은 해야 해서 하는 거였으니까.
공부는, 생각의 지경을 넓히고, 지식의 양을 늘리고, 똑똑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도 있지만 세상을 알고 사람을 알고 사회를 알고 너를 알고 나를 알고 우리를 알기 위해 하는 것이다!
(라는 결론을 공부의 이유로서 내렸었다.)
나의 공부는, 비록 처음에는 기본적 기초 지식은 알아야 한다는 엄마 말씀에 시작하게 된 것이지만, 그렇게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 생각이란 걸 하게 되었다. (사실 전에는 진짜 놀았던 것이다. 딱히 별생각이 없었다.) 그러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싫어하는 것에 대해 생각도 해보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해야 하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정말 좋아서 공부하고, 더 깊이 파헤치게 되었다.
나도 처음부터 공부를 좋아하진 않았다. 그리고 모든 공부를 좋아서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언니가 정확하게 표현해 주었다. “너는 좋아하는 공부만 열심히 하지.” 기분 나쁘긴 한데, 맞는 말이라서 반박할 수도 없다.
그렇게도 별로라고 생각했던 영어도 지금 참 좋아하고, 수학이나 과학도 이제는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거 아님) 처음은 누구나 거부감이 든다. 누구나 서툴다. 설거지 처음 해볼 때 사방에 물 튀기고, 처음 뜨개질하면 모양이 들쑥날쑥하고, 바이올린 처음 켜면 엄청나게 찍찍대듯이…. 처음은 모양새나 느낌이 그렇게 좋지 않다.
어떻게 하면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과목도 흥미롭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그에 대한 나의 해결책은 셜록 홈즈처럼 되어 보자는 것이었다. 지금은 효능이 떨어진 상태.) 설거지할 때 물을 덜 튀기고, 거품을 남기지 않는 안전하면서도 깨끗한 설거지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뜨개질할 때 예쁘게 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이올린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생각만 하고 멈추는 것이 아니고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결국 그 모든 생각의 답은 꾸준히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자기가 해 봐야지 아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생기지 않았다면 이런 결론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했다면 나의 초보 때 모습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교만해졌을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나만의 결론을 내려 보는 과정이 없었다면 내가 적어본 인생의 교훈도 많이 못 얻었을 것이다. 아직도 알게 된 인생의 교훈은 많이 없다. 아마 그래서 평생 공부해야 하는 것 아닐까.
진정한 공부를 하면 결국 의미를 찾게 된다.
세상의 의미.
사람의 의미.
인생의 의미.
진정한 공부를 하면 나를 알게 된다. 어쨌든 뭐든 해 봐야,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고 불편해하고 편해하는지를 알게 될 것 아닌가. 그리고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을 자신감이 생긴다. 내가 저번에 했던 공부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려서 그만큼의 결과를 냈는지 아니까. 그걸 아니까 조금 오래 걸려도, 결과가 좋지 않아도 조바심을 내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공부 방법, 스타일, 또 나의 경험을 아니까.
오늘 공부에 대한 정의를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나의 경험에 기반한 정의를 내려 보고자 한다.
진정한 공부는 생각하게 하는 공부다. 그것이 진정으로 나의 지식의 지경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를 앎도 공부지 않는가. 뭐, 세상 공부, 사람 공부 어떤 단어를 사용하든 좋다.
어떤 단어를 사용하든
공부를 교과 과목에만 한정 짓지는 말자.
무언가에 대해 더 알게 하고,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무언가에 대해 깨닫게 하는 것을
탐구하고 발견하게 하는 것이 바로 공부이리라.
나도 글을 쓰는 이 순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