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생각
난 사춘기가 조금 일찍 왔다. 정확하게 언젠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12살 때부터라는 건 확실하다. 사춘기 한창때는 사춘기인지도 몰랐다. 13살이 다 가고 14살을 맞이할 무렵, 내가 사춘기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인식했던 것 같다.
그래서 13살 때 모든 것이 맘에 들지 않고 다 싫었나 보다. 정말 되는 일이 없었다. 마음이 그러니까 그렇지 뭐. 사춘기의 정점을 13~14살에 찍지 않았나 싶다. 그렇지만 14살 때는 코로나였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내가 사춘기가 있었냐고 묻는다. 심지어(이건 다른 얘기지만) 자매끼리 싸우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아니, 내가(비록 하나님을 믿지만) 부처도 아니고…. 그래, 예수님도 아니고. 자매끼리 안 싸우고, 사춘기도 없으면 사람이 아닌 거 아닐까? 이 글을 쓰는 자리에서 확실하게 말씀드린다. 있었다고, 그러니까 이 글을 쓰고 있다고.(난 되도록 나 자신이 살아 숨 쉬는 증인이지 않은 내용은 나에 대한 글에 담지 않으려 한다.)
난 사춘기 때 크게 두 가지 증상이 있었다. 감정이 오락가락, 친구 없다고 찡찡대기.
사춘기 때는 누구나 그러겠지만 정말로 일희일비했다.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졌다가 나빠지고…. 많이 울기도 울었다. 자기 혼자 울고, 늦은 밤에 엄마랑 언니랑 얘기하다 울고. 진짜 그때 감정 상태는 순식간에 바뀌는 마법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나란 사람” 글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그러한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너무 커졌다. 사춘기니까 하고 넘어가기엔 나도 내가 너무 피곤했다. 굳이 그렇게 반응하지 않아도 될 걸… 굳이 그렇게 생각 안 해도 될 걸… 감정적으로 ‘그렇게’ 반응한 적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그랬던 것이다. 끊임없이 묻고 답하고. 그리고 감정이 너무 오락가락하니까 감정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게 필요했다. 여러 가지를 해보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글쓰기였다.
화가 날 때, 슬플 때(사실 부정적 감정이 건강하게 표출하기가 제일 어려우니까. 기쁠 때는 그냥 마음껏 기뻐했다. 사고 칠 염려는 없으니까. 말로 표현하고, 춤을 추고… 일기에도 신나서 적긴 하지만 화나거나 슬플 때는 감정이 이성보다 나서기 마련이다….) 그럴 때, 수첩과 펜을 준비하고 무작정 쓴다. 내 감정을.
글로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직접 화를 내면 치고받고 싸우기만 할까 봐 일부러 멀리 떨어진 대상에게 화를 내고, 울부짖고, 글로 울고 한탄하고 탄식하다 보면 확실히 감정이 수그러든다. 그때 종이에게 참 미안하긴 하다. 휘갈겨 쓴 나의 글씨체, 떨어진 눈물로 울퉁불퉁해진 종이, 낙서로 지저분해진 흰 면. 이제 다 쏟아냈다.
그러면 그때부터 다시 사건을 재구성한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내가 왜 그랬는지, 저 사람은 왜 그랬는지, 상황은 어땠는지…. 그러면 해결책이 보이고, 확실하고 깔끔하게 그 일을 마무리지을 수 있다. 난 금방 기분이 괜찮아지고 쇠뿔도 단김에 빼란 말을 항상 마음에 지니고 다니기 때문에 이런 작업이 빨리빨리 되어야 한다. (화해도 해야 하고, 사과도 해야 하고, 용서할 마음도 추슬러야 한다.)
그러나 이 방법이 불가능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잠시 심호흡을 하면서 기도를 한다. 하나님께 좀 도와달라고, 이 감정이 폭발하지 않게 해달라고. 확실히 감정을 조금 건강하게 표출하게 되는 것 같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이 방법을 터득했다.
오은영 박사님이 그러셨다더라. 아이에게 사춘기가 너에게는 어떤 것이냐고 물어봤을 때 그 아이의 대답이 바로 사춘기 때 보여지는 모습이라고 하셨다. 나는 그와 같은 엄마의 질문에 성장하는 시기라고 대답했었다. 그리고 지금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첫 번째로 나에게 사춘기는 나를 아는 시기였다.
그리고 친구. 나이와는 상관없이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이 친구라고 하는 엄마 말씀도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언니와 친구라고 생각했다(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가족이 아닌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이 없다고 많이 찡찡 부렸다.
그래서 교회에서 친구 때문에 상처도 받고… 지금 생각해 보면 되게 찌질했던 것 같다. 그런데도 교회에서 친구 일을 겪고 1년간 다른 친구들을 못 만나면서 결국 알았다. 친구가 다가 아님을. 친구가 인생의 모든 것이 될 수 없음을. 그리고 난 작년에 행복하게도 나와 정말 잘 맞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았다. (내가 내건 좋은 친구에 대한 두 가지 조건이었다. 나랑 생각이 비슷하고, 공감 가능한 친구.)
언제든 다 때가 있는 법이다.
두 번째로, 사춘기는 내가 더 멋진 나로 성장하는 시간이었다. 이때 깎아지는 경험을 매우 많이 한 것 같다.
사춘기,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사춘기는 성장하는 시기니까. 나는 계속 살아갈 것이고,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하기에 더 성장해야 하니까. 계속해서 찾아오는 사춘기들을 잘 맞이하고 잘 떠나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